‘수상한 파트너’, 법조계의 수상한 사람들

박희아 ize 기자 2017.06.2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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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파트너’, 법조계의 수상한 사람들


“증거불충분, 너 내 말만 안 들리지?!” SBS ‘수상한 파트너’에서 62세의 고참 변호사 변영희(이덕화)가 신참 변호사 은봉희(남지현)에게 윽박지른다. 하지만 은봉희를 포함한 후배 변호사들은 아무도 변영희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옆에서 노지욱(지창욱)이 “은 변(호사)”이라고 부르자, 그제야 은봉희는 “네”라고 대답한다. 이것은 방계장(장혁진)의 말처럼 “선택적 청력상실”이다. 사법연수원에서 살인 혐의를 썼다 증거불충분 판정을 받고 풀려난 은봉희는 그 일로 인해 푼돈조차 벌기 힘든 가난한 변호사가 되었고, 윗선의 지시를 거부하고 은봉희를 도왔던 선배 검사 노지욱도 옷을 벗었다. 변영희는 은봉희가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증거불충분’이라고 부르며 후배를 조롱한다. 이에 대해 젊은 변호사들은 까마득한 선배 법조인의 잘못된 행동을 아예 무시하면서, 상호 존중이 없는 요구에 전혀 응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tvN ‘비밀의 숲’에는 상명하복이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믿는 수많은 검사들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윗선의 지시에 따라 조사 결과를 비밀에 부치는 검사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후배 검사에게 곧 잘릴 것이라고 협박하는 선배 검사도 있다. 비단 ‘비밀의 숲’뿐 아니라, 많은 드라마가 현실 법조계의 고질적 문제가 된 수직적인 법조계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반면 ‘수상한 파트너’는 젊은 법조인들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부당한 지시와 불합리한 타협 없이도 집단이 유지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은봉희는 자신을 범인으로 몰고 가는 검사장 장무영(김홍파)에게 다시 법조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할 위험을 무릅쓰고 “내가 당신 아들을 죽이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노지욱은 사건 종결 이후에도 은봉희를 괴롭히는 그에게 “무턱대고 증오하고 탓할 사람이 필요하겠지만 적당히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한 번만 더 이렇게 하면 법대로 행동하겠다”며 강력한 태도로 자기 의사를 표명한다. 수평적인 관계는 법조인과 용의자 간에도 유지된다. 의심이 가는 범죄 용의자를 만난 노지욱은 여러 차례 그와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신다. 혐의가 확실해질 때까지 친한 검사에게는커녕, 동료 변호사들에게조차 귀띔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함부로 누군가의 신변을 구속하려 들지 않는다. 반면 수직적인 문화를 대변하는 장무영은 분노에 못 이겨 은봉희의 목을 조르고, 이미 종결된 사건에 대해 멋대로 재수사를 지시한다. 그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 화풀이하는 방법은 그들의 신체를 구속하거나 위계질서를 남용하는 것이다.



물론 ‘수상한 파트너’가 그리는 변호사의 모습을 비현실적이라 할 수도 있다. 30대 변호사 A씨는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것과 똑같은 분위기는 분명 현실에 없다. 법조계는 위계질서가 워낙 강한 집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A씨는 “로스쿨이 많아지면서 노지욱처럼 젊은 법조인들의 숫자가 많아졌다. 그들이 로펌을 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젊은 변호사들이 기존의 40~50대 선배들을 대신해 파트너가 된다”면서 “아직 업계에서 많지는 않지만 조금씩 수평적인 관계가 태동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젊은 사람들끼리 일을 하면서 아랫사람에 대해 터치를 심하게 하는 경우가 적고, 가르치려고 하는 태도도 줄었다”고 덧붙였다. ‘수상한 파트너’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려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드라마를 통해 직장 및 조직 문화에 있어 보다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해준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이와 지위에 상관 없이 인격을 존중받고, 일과 사생활에 있어 서로의 영역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보다 좋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단계다. ‘수상한 파트너’는 그것을 인간관계의 기본으로 삼으면서, 그렇지 않은 이들의 문제를 보여준다. 이는 노지욱과 은봉희의 로맨스에서도 노지욱이 은봉희의 위에 있거나 하지 않은 태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명랑한 주인공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해묵은 관행이 조금씩 깨지고, 보다 새롭고 좋은 인간관계가 주는 매력을 통해 좋은 반응을 얻는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새로운 드라마도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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