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나 싸게 팔라"는 말 사라진 서울국제도서전

머니투데이 김홍민 북스피어 출판사 대표·한국출판인회의 서점상생위원장 2017.06.2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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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홍민 북스피어 출판사 대표

 '국내 최대 규모의 도서전' 제23회 서울국제도서전이 막을 올린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부스를 살펴보고 있다./사진=뉴스1 '국내 최대 규모의 도서전' 제23회 서울국제도서전이 막을 올린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부스를 살펴보고 있다./사진=뉴스1


서울국제도서전의 마지막 날, 조촐한 시상식이 있었다. “'책의 발견전'에 초대된 50개의 출판사 중 어느 곳이 가장 마음에 드셨나요?”라는 질문에 답한 독자들의 설문과 도서전 운영위원들의 투표로 뜨인돌, 허밍버드, 남해의 봄날이 선정되어 꽃다발과 상금을 받았다. 뜨인돌은 영국의 탐험가로서 남극탐험 역사상 가장 특별한 이야기를 선사한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 경에 관한 다섯 종을 큐레이션하고 ‘새클턴의 위대한 항해 사진전’으로 벽 전체를 꾸미는 한편, 부스를 찾은 독자들에게 큐레이션 취지와 사진에 담긴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허밍버드 출판사는 부스 내에 자판기를 설치했다. 버튼을 누르고 1초간 기다리면 컵이 나오는 건 커피 자판기와 똑같다. 다른 건 이 컵에 커피가 아니라 ‘책 속 한 줄 카피’가 담겨 있었다는 거다. 그래서 이 자판기의 이름은 ‘카피(copy) 자판기’이다. 남해의 봄날은 통영에서 직접 운영하는 서점 겸 게스트하우스 ‘봄날의 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공간에서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의 작가와 독자 만남 행사를 열었다. 찾는 독자가 많은 책이었던 만큼 큰 홀을 빌릴 수도 있었지만 작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 지근거리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이 세 출판사의 큐레이션과 부스 인테리어와 이벤트가 이번 도서전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각종 도서전은 대개 각 출판사들이 많은 종의 책을 죽 늘어놓고 판매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하면 독자들과 즐겁게 놀 수 있을까’라거나 ‘이런 걸 하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에 공을 들인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도 “책 많이 팔았어?”라고 물어보는 대신 “북스피어에 설치한 책 선물 뽑기 기계랑 재생불능반품 낱장 판매 아이디어 참 좋던데 독자들 반응은 어땠어”라고 물어보는 출판관계자가 많았다.

도서전 기간 동안 담당자들은 SNS에 올라오는 독자들의 의견을 계속 모니터했다. 혹시 불편했다는 내용이 있으면 바로 수정하거나 다음 도서전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다행이라고 할지 5000원짜리 입장권 금액만큼 도서 구매 쿠폰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점과 전국의 특색 있는 동네책방들을 한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점이 좋더라는 소감이 자주 눈에 띄었다. “‘폭망('심하게 망했다'는 뜻)한 행사’라고 부르던 도서전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선뜻 수락해준 동료 서점들에게 너무 고맙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이번 도서전은 이렇게까지 호평을 받지 못했을 거다. 출판협회가 이 점을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한다”는 아트디렉터 김형진 씨(는 '서점의 시대' 기획과 홍보 포스터, 리미티드 에디션 제작을 맡아서 전례 없이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였다)의 견해에 나도 완전히 동의한다.



무엇보다 “도서전 같은 쓸데없는 짓 그만 하고 책이나 싸게 팔아라”는 얘기가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고무적이었다. 나만 못 들은 건지도 모르지만, 관련 기사에 툭하면 달리던 정가제 관련 댓글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개선해야 할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양한 행사를 효과적으로 홍보하지 못해 사전신청 이벤트에 참여하지 못한 독자가 많았다는 점과 부스의 구조나 배치가 세심하지 못했다는 점 등은 과제로 남았다. 하지만 ‘변신’의 두 번째 행사를 치를 때는 어렵지 않게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본다. 끝으로 한 가지만 더 얘기하고 싶다. 이번 도서전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제아무리 용을 써도 요지부동이던 체중이 5킬로그램이나 빠졌다. 덕분에 조금 잘생겨진 것 같아서 기쁘다. 지난 석 달 동안 주말도 없이 도서전 준비에 열을 올렸으니, 이제 그동안 못했던 연애를 해야겠다.

김홍민 북스피어 출판사 대표·한국출판인회의 서점상생위원장김홍민 북스피어 출판사 대표·한국출판인회의 서점상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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