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울어진 운동장 싸움…세기의 재판, 결말은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17.06.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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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싸움이다"

지난 16일까지 29회차를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공판을 두고 한 법조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는 "모든 재판은 백지 상태에서 다투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이 부회장은 이미 여론전에서 '유죄 추정'을 받고 법정에 섰다"며 "현 단계에서 그의 유무죄를 알 수 없겠지만 법조인 입장에서 볼 때 피고인이 불리한 입장에서 싸우고 있는 것은 맞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삼성 측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것이나 최순실·정유라 모녀에 승마지원을 한 사실이 강요에 의한 것인지 뇌물에 해당하는지 경계선상에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는 특검 측 주장 외엔 받아들여지기 이미 힘든 상황이 돼버렸단 뜻이다.

앞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해 각각 실형이 선고됐지만 해당 재판부는 삼성의 청탁이나 박 전 대통령 등 청와대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내리지 않았다. 즉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읽혔다.



알려진 것과 달리 법정에서는 삼성 측이 청와대나 최씨 측 요구를 쉽게 뿌리치지 못했을 것이란 증언이 상당수 나오고 있다.

이 모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증인으로 나와 "재단설립이나 출연금 결정 등 문제에서 기업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며 "삼성도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수동적으로 출연을 약속했던 것"이라 증언했다.

또 다수 승마계 관계자들도 출석해 "삼성 측도 정유라 외 다른 선수 선발을 위해 노력했다"며 "삼성이 모든 선수를 지원하려고 계획했지만 최씨 반대로 쉽지는 않았을 것"이란 취지로 진술했다.


일부 법조인 사이에선 법리나 수사과정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됐다. 특히 삼성 측 승마 지원에 단순뇌물죄를 적용한 부분이다.

한 변호사는 "비공무원인 최씨가 뇌물을 받았기 때문에 공무원인 박 전 대통령과 뇌물의 이익이 공유됐다는 점과 둘 사이 공모관계가 명확이 입증돼야 한다"며 "이같은 사실들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아 단순뇌물죄 적용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법리대로라면 1심은 여론에 기대질지 몰라도 2심과 3심에 가면 깨질 논리"라고 해석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비상시국임을 감안해도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불구속 수사 원칙, 죄형법정주의 등 많은 원칙이 등한시되는 듯해 안타깝다"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재판에는 '세기의 재판'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단순히 정권 교체에 톡톡한 역할을 한 특검과 매머드급 변호인단이 붙어서만은 아닐 터이다. 여론과 법치주의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끝에 내려질 결론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기자수첩]기울어진 운동장 싸움…세기의 재판,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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