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운명을 바꾼 투표

윤지만(칼럼니스트) ize 기자 2017.06.1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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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40.3% 득표율을 얻게 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영국의 정치학 교수 매튜 굿윈도 설마 노동당이 그 정도 득표율을 얻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그는 제러미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이 38% 득표율도 힘들 것이라 봤고, 만약 38%를 넘는다면, 기쁜 마음으로 브렉시트에 관해 쓴 자신의 책을 먹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다. 애초에 이번 총선은 테리사 메이 총리가 의회 내 보수당의 위치를 확고한 다수당으로 만들기 위해 예정됐던 것보다 3년이나 앞당겨 치른 정치적 도박이었는데, 그 도박은 완전히 실패했다. 테리사 메이도 당연히 승리할 것으로 생각했던 도박이었으니, 책을 먹겠다는 공언이 나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당연해 보였던 승리는 당연하지 않았고, 매튜 굿윈 교수는 방송에서 자신이 쓴 책을 먹어야 했다. 총 650석의 의석 중에 330석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던 보수당의 의석수는 13석 줄어들어 317석이 됐다. 10석을 차지하고 있는 북아일랜드민주통일당과의 협상 덕에 테리사 메이가 일단은 총리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영국 의회에서 이제 과반을 차지하는 정당은 없다.

2달 전만 해도, 테리사 메이는 이번 총선으로 무리 없이 100석 정도를 더 가져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 기대가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선거 기간 내내 테리사 메이는 계속해서 실수했다. 가장 큰 실수는 5월 19일에나왔다. 보수당은 공약집에 자산 10만 파운드 이상의 노인들이 돌봄 서비스를 받을 때, 그 비용을 노인들이 직접 부담하게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는 현행 사회 보장 제도보다 혜택을 받는 인구를 줄여버리는 일이었다. 반발은 당연했다. 노동당은 여기에 “치매세”라는 이름을 붙였고, 보수당이 영국의 가장 취약한 이들을 돕는 데는 관심이 없다는 기존의 인식을 유권자들에게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실수는 이뿐만이 아니다. 테리사 메이가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테리사 메이는 선거 유세에서 계속해서 딱딱한 모습만 보여줬고, 당 대표들이 나오는 TV 토론을 거절하기까지 했다. 이번 총선 실패의 책임이 대부분 테리사 메이에게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이런 메이의 반복된 실수들 때문이다.



더 타임스‘는 비록 보수당이 이번 총선을 브렉시트에 관한 선거로 포장하려 했지만, 실제 유권자들의 관심은 공공 복지와 긴축 재정에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총선이 브렉시트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그동안 테리사 메이가 추진했던 브렉시트는 영국이 유럽 단일 시장과 관세 동맹을 떠나는 하드 브렉시트였다. 하지만 이제 하드 브렉시트를 밀어붙이긴 힘들어졌다. 영국은 EU에 무역을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영국 수출의 약 44%가 유럽으로 향한다. 하드 브렉시트는 영국과 EU 양쪽의 경제에 모두 타격을 준다. 테리사 메이는 선거 전, “영국에게 나쁜 거래를 하는 것보다는 아예 거래가 없는 게 낫습니다.”라고 말하곤 했지만, 보수당이 과반이 안 되는 상황에서 하드 브렉시트는 이제 의회를 통과하기도 힘들고, EU에서도 반기지 않는다. EU 측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은 영국의 총선 후, “선거의 메시지는 EU와 공정한 협상을 하고, 영국이 EU를 이런 식으로 떠나는 것이 정말로 좋은지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복스’가 말하듯, 하드 브렉시트에 힘을 실어주려 했던 테리사 메이의 도박은 역설적이게도 영국을 좀 더 소프트해진 브렉시트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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