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분노·갈등의 치유가 필요한 사회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장 2017.06.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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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영혼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의 몸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고대 그리스의 시인인 호메로스가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을 주제로 쓴 그리스 최대 최고의 민족 대서사시 '일리아스'의 첫머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트로이의 별명인 일리오스(Ilios)에서 유래한 일리아스는 ‘일리오스 이야기’라는 뜻으로 2004년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트로이(troy)를 통해 잘 알려진 것처럼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점령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프티아의 왕 펠레우스의 아들인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으로 그리스군의 총사령관인 아가멤논과 전리품 문제로 갈등을 빚는다. 이후 전쟁에 불참하고 자신의 분노를 트로이인이 아닌 자신의 민족인 아카이오이족(그리스인)에게 터트리는 대목이 이 일리아스의 시작 부분이다.



철학계의 악동으로 통하는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가 쓴 '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이야기가 있는 집)'라는 책은 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시작점으로 분노와 인류의 역사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는 '역사는 분노와 함께 시작됐다'며 호머의 일리아스에서의 분노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사회 경제학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지난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끓어올랐던 분노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정권 교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한국 민주주의에 큰 획을 그은 '광장의 분노'는 선거라는 민주제도를 통해 지배세력의 교체를 이끌어냈다.


세상을 지배했던 분노의 프레임이 이제는 새로운 성장의 동력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직은 분노의 불씨가 여전히 타고 있는 듯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고, 이와 때를 같이 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한 마디 거들었다가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시대의 선언은 '인간다운 삶'의 예외로 분류되는 비정규직을 한국 사회에서는 사라지게 하겠다는 의지다. 정규직과 차별된 삶에 있는 이들에게 인간다움을 가져다주겠다는데 경총도 반대하는 입장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경총도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을 없애는데 동의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방법을 조금 달리할 뿐이라고 한다.

광장의 분노를 극복하고 새롭게 출범한 새 정부가 과거 정부와 다른 점이 독단과 억압이 아닌 소통이라는 데 기대를 걸고 한마디 했다가 혼쭐이 나고 있다. 많이 국민들은 문 대통령의 협치와 소통, 통합의 의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슬로터다이크는 분노가 만들어지고 기획되면 복수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분노가 예금처럼 은행에 모아지면 인류 역사에서는 혁명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러다가도 분노가 승화되지 못하고 과도하게 덩어리지면 자신을 공격하게 되기도 한다고 했다.

트로이를 점령하기 위해 트로이의 성벽 앞에 선 그리스군에게는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큰 힘을 발휘했다. 변화를 필요로 할 때의 분노는 가장 높은 수준의 충족감을 준다고 슬로터다이크는 말한다.

또 분노는 모든 이에게 폭발력과 진실이 합쳐지는 것을 보여주는 필수적 상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적절한 선이 필요하다.

책에선 결국 포위된 도시에서 그리스 군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아니라 오디세우스의 지략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리스군의 지략가인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의 목마를 만들어 공고했던 트로이성을 함락시키는 아이디어를 내 그리스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새 출발선에 선 우리에게 분노의 연장이 아닌 통합의 수단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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