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으로 가는 길 '서울로 7017'

머니투데이 엄성원 기자 2017.06.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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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부동산]찻길→보행길 변신' 핫플레이스 부상한 서울역 고가

염천교 수제화거리에서 바라본 중림동 일대/사진=엄성원 기자염천교 수제화거리에서 바라본 중림동 일대/사진=엄성원 기자


“서소문공원을 뒤로 하고 서울역으로 향하는 철길을 따라 걷다가 염천교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내 고층건물에 갇혔던 시야가 조금 트인다. 수제화를 파는 가게 몇 곳을 눈동냥으로 지나쳐 횡단보도를 건너면 가파른 언덕길이 앞을 가로막는다. 서울 도심을 굽어보듯 위치한 중림동 약현성당으로 향하는 길이다. 때아닌 5월 더위가 주는 짜증도 잠시, 언덕을 오르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찌를 듯 솟은 서울 도심의 빌딩숲을 지나 저 멀리 남산타워까지 시야가 탁 트인다. 거칠 것 없는 시야와 눈부신 하늘, 간만에 눈이 호강한다.”

서울시청서 바라본 성공회 성당/사진=엄성원 기자서울시청서 바라본 성공회 성당/사진=엄성원 기자
개장 1주일째를 맞은 지난주 주말 ‘서울로7017’(서울역 고가 보행길)을 찾았다. 주말이면 하루 10만여 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데 진짜일까 싶었다. 서울시청에서 출발해 정동, 중림동을 거쳐 서울역 고가를 지난 뒤 남산 밑 후암동을 일주하는 코스를 택했다. 서울시가 추천한 서울로7017 일대 4개 도보 코스 중 1코스(중림·만리동 일대)와 2코스(소공동 일대) 4코스(후암동 일대)를 두루 지나는 코스다.
 
직선거리로 치면 3㎞ 남짓의 짧은 여정이지만 중간중간 추천 관광 포인트를 둘러보고 어설픈 사진을 찍기 위해 걸음을 멈추는 통에 전체 주파시간은 4시간 가까이 걸렸다. 서울로7017에서 봄기운을 만끽하고 남산공원과 약현성당에서 서울 도심을 내려다보며 망중한에 빠지기도 했으니 실제 걷는 시간은 그보다 훨씬 적을 터다.



덕수궁 길/사진=엄성원 기자덕수궁 길/사진=엄성원 기자
앞서 말했든 서울시가 추천한 서울로7017 주변 도보 코스는 모두 4개. 이중 인기 높은 코스는 도심 속 기찻길과 약현성당, 중림시장 등을 지나는 중림·만리동 일대 1코스다. 총 길이는 2.5㎞ 정도다.
 
실제 걸어보니 인기가 실감 난다. 서소문 고가를 지나면 초록색으로 치장된 작은 공원이 나오고 그 옆으로 울긋불긋한 꽃으로 둘러싸인 기찻길이 이어진다.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약현성당. ‘사적 252호’ ‘명동성당보다 먼저 지어진 국내 첫 벽돌양식 교회 건물’ 등 건축사적 가치보다 그저 거기 있어줘서 고맙다는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 오피스빌딩과 아파트로 가득한 도심에서 시간이 비껴간 듯한 공간이다. 성모상이 있는 성당 정문에서 서울 도심을 바라보면 그 어떤 고층건물도 다 눈 아래 위치한다.

약현성당/사진=엄성원 기자약현성당/사진=엄성원 기자
한숨을 돌리고 약현성당 뒤편 길로 돌아 나오니 서울로7017이 시작된다. 애완 거북이와 함께 산책을 나왔다는 청년부터 꽃놀이 삼아 동네 친구들과 길을 나섰다는 아주머니까지 이미 인파로 가득하다. 벤치에 앉아 서울역 앞 대로를 지나는 차를 내려다보는 중년 남성, 수생식물이 자라는 수조 옆에 나란히 앉은 20대 커플, 트램펄린에서 뛰며 연신 비명을 지르는 꼬마 숙녀까지 즐기는 모습도 다양하다. 논란(?) 속 조형물 ‘슈즈트리’를 굽어보며 비 오면 냄새 날까 걱정이라는 어머니의 진지하다 못해 심각한 표정까지 재미있다.



서울스퀘어 쪽 출구로 내려와 남대문경찰서를 지나니 남산길이 시작된다. 서울스퀘어, 남대문교회, 남산공원으로 이어지는 4코스(1.6㎞)다. 한편으로는 CJ그룹 본사를 비롯한 대형 오피스건물이 자리하고 반대편으로는 오래된 상가와 아파트, 저층주택 등 옛 동네 모습이 남아있다. 찻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시대가 마주한 듯한 모습이다. 용산, 이태원 등 인근 지역 임대료 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작은 카페와 주점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서울 도심 속 걷는 길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공존을 떠올리게 한다. 개발과 발전의 시간 속에 초고층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서고 16차선 찻길이 뚫리는 와중에도 옛 시간을 간직한 삶의 흔적은 남기 마련이다. 서울역 고가는 앞서 40년 가까이 사람이 지나지 못하는 찻길로만 기능했다. 그 사이 서울 도심은 하나둘 고층빌딩이 점령했다.
 
서울역 고가가 걷는 길로 변하면서 일대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차 대신 걸어서 도심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예쁜 카페와 음식점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다. 쇠퇴해가던 남대문시장과 염천교 수제화거리에도 새로운 활력을 기다리는 기대감이 넘쳐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랫동안 잠잠하던 일대 부동산시장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현지 공인중개소에 따르면 5월초 현재 중림동 일대 상가 매매가는 대로변 1층 상가를 기준으로 3.3㎡당 7000만원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3000만~4000만원에서 약 2배 뛴 셈이다.
 
후암동 아파트 가격도 수직상승 중이다. 후암미주아파트의 전용 62㎡ 평균 매매가는 지난해 5월 4억2500만원(KB부동산 기준)에서 5월 현재 4억8000만원까지 뛰었다. 1년 매매가 상승률이 약 13%에 달한다.  
후암미주아파트는 올해로 입주 38년째를 맞는 오래된 아파트다. 이 아파트 매매가는 2010년만 해도 5억원을 웃돌았지만 이후 4년간 줄곧 내리막길을 달렸다. 매매가가 본격 반등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남산길에서 내려다보 남대문시장 일대/사진=엄성원 기자남산길에서 내려다보 남대문시장 일대/사진=엄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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