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윤활유 軍납품, 항공기 추락할뻔…업자 '구속'

머니투데이 진달래 기자 2017.05.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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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유명업체 상표 위조, 軍 제품검수 허술한 점 노려…공군 출신 업자, 2년 이상 범행

경찰이 불량 윤활유를 방위사업청에 납품한 A화학 창고(왼쪽)와 위조 라벨지를 만든 인쇄업체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사진=경찰청경찰이 불량 윤활유를 방위사업청에 납품한 A화학 창고(왼쪽)와 위조 라벨지를 만든 인쇄업체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사진=경찰청


불량 윤활유를 군에 납품해 15억원을 챙긴 업체 대표가 경찰에 잡혔다. 공군 출신인 이 대표는 군의 허술한 제품 검수를 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불량 윤활유를 사용한 공군 항공기, 헬기 등에서 중대한 결함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국방부 조사본부와 공조 수사로 저가 윤활유를 미국산 특수윤활유로 속여 방위사업청에 납품한 A화학 대표 이모씨(58)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고 25일 밝혔다. A화학 직원 정모씨(33) 등 2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 대표 등은 2014년 4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가짜 특수윤활유 34종을 방위사업청에 43차례 납품해 약 15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납품한 가짜 제품 양은 드럼통 489개, 들통 82개, 캔·튜브 등 용기 3만3990개다. 특수 윤활유는 항공기, 군함 등 각종 무기·장비에 사용된다.

조사결과 이들은 미국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제품 세탁'을 했다. 군 규격에 맞지 않은 오토바이, 트랙터 윤활유를 미국에 일반 수출품목인 양 보낸 후 다시 들여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제품인 것처럼 위조 라벨지 등을 붙였다. 수입신고필증, 시험성적서 등 관련 서류도 위조해 방위사업청에 제출했다.



군에 따르면 불량 윤활유를 사용한 공군 항공기는 진동(폭연), 엔진 실린더 헤드균열 등 손상으로 운항 중 추락 위험이 발생해 조기 회항하는 사례가 있었다. 해군 헬기와 군함도 기체가 손상되거나 전자기판이 녹는 현상 등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군 하사관 출신인 이 대표가 군 시절 총무·경리 업무를 담당해 내부 체계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A업체는 2008년부터 군에 윤활유 등을 납품했다.

경찰은 A업체가 2014년 이전에 납품한 제품은 이미 사용돼버렸기 때문에 정품 여부 등을 파악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2년여간 가짜 제품이 꾸준히 납품된 경위를 미뤄볼 때 방위사업청 혹은 군 내부 관계자와 이 대표 간 연결고리가 있을 가능성 등도 염두에 두고 추가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범행개요/그래픽 출처=경찰청범행개요/그래픽 출처=경찰청
A업체는 2014년 12월 한 화력발전소에 '터빈 작동유' 모조품도 비슷한 방식으로 납품했다. 이 대표는 이를 통해 2300만원상당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도 받는다. 국내산 저가 유압유에 미국 제품 상표 등을 위조해 붙였다.

이 화력 발전소는 해당 모조품을 사용하기 전으로 다행히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경찰은 만약 모조품을 사용했다면 화재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만약 불이라도 나면 발전소가 약 90억원을 손해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태현 지능범죄수사대장(경정)은 "군이 제품을 검수할 때 수량, 포장상태, 파손여부만 육안으로 확인한다는 점을 악용했다"며 "화력발전소 역시 납품업체가 제출한 시험성적서 등 문서 진위 여부는 확인하지 않는 것을 노렸다"고 말했다.

경찰은 군 수사기관과 정보 공유 등 협력 체제를 강화해 방위사업 비리를 계속 수사해 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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