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로 보이는 청령포 전경/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매번 절감하는 것이지만 단종을 만나러 가는 길은 슬픔과 동행하는 길이다. 계절은 쉼 없이 오가고 시간은 앞으로 줄달음치지만 바위마다 돌마다 새겨진 소년 왕의 눈물은 지워지지 않는다. 청령포에 갈 때는 가슴에 묻어둔 슬픔의 보따리 먼저 풀어 놓을 일이다. 강을 건너는 배는 슬픔을 아는 사람만 탈 자격이 있다. 진정 슬퍼본 사람에게만, 스스로가 가진 행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주어진다.
강변의 둥근 자갈에는 시간이 지문처럼 새겨져 있다. 559년 전 쫓겨난 왕이 걷던 강변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으리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를 만난다. 손을 잡고 소나무 숲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모래밭까지 슬픔으로 질척거린다.
청령포의 단종 어소/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먼저 왕이 머물렀다는 어소(御所)를 둘러본다. 승정원일기에 따라 복원했다고 하지만 조금 미심쩍다. 이렇게 번듯한 집이었을 리 없다. 구들도 없는 방에서 지냈다는 야사에 더 믿음이 간다. 밀랍인형들만 자리를 지킬 뿐, 왕이나 옛 주인을 모시겠다고 따라왔다는 궁녀들의 자취는 없다. 어찌 인형으로 그 절절한 슬픔을 표현할 수 있으랴. 주인의 죽음을 보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던 궁녀들의 피눈물은 또 어찌 표현할까.
역시 가장 오래 마음이 머무는 곳은 관음송(觀音松)이다. 청령포는 700그루의 금강송이 서 있는 보기 드문 솔숲이지만, 실제로 단종을 만난 소나무는 관음송 하나뿐이다. 단종이 기거할 때 이미 50∼100살이었다고 하고 그 뒤로 550년도 더 지났으니 어림잡아도 600살이 넘었다. 왕의 눈물을 보았으니 관(觀)이요, 황혼녘 폐부를 찢는 오열을 들었으니 음(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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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풀들이 아우성치며 키를 재고 있는 길을 걸어 망향탑으로 간다. 망향탑은 절벽의 손바닥만한 빈 터에 쌓은 초라한 돌무더기다. 단종이 한양에 있는 왕비 송 씨를 그리워하며 막돌을 주워 쌓았다고 한다. 돌이 아니라 눈물을 쌓은 것이겠지. 쌓아도 쌓아도 가시지 않았을 분노와 그리움, 그리고 절망을 가늠해 본다. 걸음의 종착지는 노산군이 된 왕이 한양 쪽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노산대다. 거기 특별한 것이 있을 턱이 없다. 80m의 까마득한 절벽과 퍼렇게 서슬을 세운 강물에 심사만 어지러울 뿐이다. 조카를 가두기 위해 이 험지를 찾아낸 숙부의 마음이 칼이 되어 폐부를 저민다.
다시 내려와 강 건너편 솔숲을 바라본다. 거기 단종에게 내릴 사약을 가져왔던 금부도사 왕방연의 시조비가 있다. 단종의 죽음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읊었다는, ‘머나먼 길에 고은님 여희압고’로 시작하는 시조는 가혹했을 시간의 편린을 전해준다. 단종은 청령포에서 두 달 정도 지냈다. 6월에 도착해서 8월에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는 바람에 영월 동헌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처소를 옮겼다가 그해 10월 꽃 같은 생애를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