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트럼프의 거짓말과 장미대선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원종태 베이징 특파원 2017.04.2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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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트럼프의 거짓말과 장미대선


트럼프 대통령이 수천 킬로미터 밖에 있던 ‘칼빈슨호’를 한반도로 보냈다고 한 거짓말을 놓고 말들이 많다. 한반도 긴장이 극대화한 상황에서 그는 하필 왜 이런 거짓말을 한 것일까. 우선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책임질 일이 거의 없다는 점부터 짚고 가자.

미·중 관계에 해박한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저서 ‘왜 리더는 거짓말을 하는가’에서 “국가 지도자는 특정 정책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것이 들통 나더라도 그것이 의도한 대로 됐을 경우에는 그리 큰 정치적 대가를 치를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대통령의 외교적 거짓말에는 일종의 특권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이 거짓말을 통해 무엇을 노렸을까. 싱가포르 라쟈라트남 국제연구원 리차드 비친거 선임연구원이 최근 아시아타임스에 기고한 내용 중 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비친거는 “만약 트럼프가 무모한 무엇인가(군사적 제재)을 추진한다면 북한의 (핵무기) 편집증을 정당화해줄 수 있고,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위협만 한다면 아마추어나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근거해 보면 트럼프는 결국 ‘군사적 제재’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사이의 중간 단계인 ‘칼빈슨호 거짓말’을 택한 셈이다. 이는 분명히 북한 김정은 정권은 물론 거짓말로 확인되기 전까지 시진핑 주석에게도 상당한 압박을 줄 수 있다.



트럼프의 거짓말이 미국에게 결코 나쁘지 않은 결과를 준다는 해석은 또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최근 한반도 긴장을 다룬 기사에서 “한국의 보수 언론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위해 긴장 국면을 조장하려는 측면이 있다”며 “미국 보수 언론도 한·미 유대 관계가 느슨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 주도해 긴장을 높이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미국 보수 언론 뿐 아니라 “트럼프 정부도 한국에 이전 노무현 정부 같은 진보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꺼리는 측면이 있다”며 “북한 정권과의 긴장 고조에는 한국 보수 세력들을 결집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덧붙였다. 칼빈슨호 거짓말이 보수 세력에게 주는 메시지가 작지 않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거짓말 효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거짓말이 일본 아베 총리까지 도울 수 있어서다. 자신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 인가 문제로 정치적 곤욕을 치르고 있는 아베 입장에서 칼빈슨호 출동으로 촉발될 ‘한반도 긴장+북한 위협’은 분명히 한숨 돌릴 수 있는 기회다. 아베 총리가 누군가. 미국에게 70만개 일자리와 4500억달러 투자 보따리를 안겨준 인물이다. 주한 미군 철수 논란은 있어도 주일 미군 철수는 입 밖에 내놓지 않는 것이 작금의 미·일 관계다. 중국 견제를 위해서도 미·일 관계는 절대 흔들려서는 안된다.

이런 복합적 노림수가 한국에서 5630Km 떨어진 인도네시아 순다해협에 있는 칼빈슨호가 조만간 한반도로 진입할 것처럼 둔갑한 이유로 보인다.
하지만 어찌보면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10분 동안이나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는 더 의도적인 거짓말을 들었다는 점이다. 미·중 양강 지도자들의 한국을 상대로 한 이런 거짓말들은 처절하고 비정하게 와서 꽂힌다. 우리는 국가 지도자조차 없는 공백이어서 더 뼈아프다.


그러나 힘의 논리는 냉정하다. 비참해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국제 질서에서는 거짓말도 못하고, 한없이 착하기만 한 사슴 ‘밤비’ 같은 국가나 지도자는 금물이다. 순진한 밤비가 고질라에게 어떻게 당하는지 1분30초짜리 애니메이션 ‘밤비가 고질라를 만났을 때’를 한번 보기 바란다. 이 애니메이션이 바로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이 엄중한 실제 상황은 이제 5월9일 우리 대통령을 어떻게 뽑느냐, 우리 국민 모두가 그에게 얼마나 열렬한 지지를 보내주느냐에 쏠린다. 어떤 인물이 당선되든 외교 관계에서만큼은 우리 지도자에게 국민의 한 뜻을 몰아줘야 한다. 사드와 북핵을 뛰어넘을 지도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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