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딜레마…상품은 ‘구매’되지 않고 ‘고용’된다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7.04.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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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일의 언어’…"통찰과 관찰 통한 질적 데이터가 혁신 성공의 비결"

혁신의 딜레마…상품은 ‘구매’되지 않고 ‘고용’된다


이노베이션(혁신)은 모든 회사가 도전하는 최고의 수행 과제이자 목표다. 하지만 생각만큼,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오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최고의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최근 맥킨지 조사에서 세계 경영자의 84%가 이노베이션이 회사 성장 전략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시인했지만, 그들 중 94%는 이노베이션 실적에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이노베이션 시도가 기대에 훨씬 못 미친 셈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머니볼’(타율보다 출루율이 공격적 성공 지표)이나 ‘식스시그마’(품질 혁신과 고객 만족의 달성을 위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제 해결방법)의 원리처럼 정확하고 체계적인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객관적 수치에 의존했는데도, 예측이 실패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예를 들어보자. 아이스크림 판매량과 산불 발생 빈도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여름철 기온이 높아질수록 덩달아 올라간다. 하지만 누구도 두 사건을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혁신에 실패하는 회사들은 대개 상관과 인과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높다. 즉 고객이 어떤 특정한 제품을 구입하는 이유가 있는데, 그 배후의 인과관계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혁신의 목표는 더 좋게, 더 수익성 있게, 타사 제품과 차별화하는 데 집중될 뿐이다.



저자는 혁신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단 하나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해주기를 기대하면서 그 제품을 고용했는가?”

제품을 단순히 ‘구매’하는 것이 아닌, ‘고용’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저자의 논리는 제품이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는가로 요약된다.

선택한 제품이 일을 잘해낸다면 그 제품을 다시 ‘고용’할 것이고, 제 역할을 못하면 즉시 ‘해고’되는 것이다.


여행자들이 메리어트나 스타우드 같은 일류 호텔들 대신, 낯선 가정집에 숙식을 제공 받는 에어비앤비나 다른 교육 비디오보다 훨씬 더 값싸고 조악한 수학 비디오 서비스를 제공한 칸아카데미의 성공적 혁신 비결은 ‘더 좋아서’가 아니라 ‘고객 니즈에 어울리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열등한 제품을 보유한 후발업체들의 성공을 저자는 오래전에 ‘파괴적 이노베이션’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 이론이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모든 예측의 로드맵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저자가 보는 가장 확실한 로드맵은 ‘할일 이론’(Jobs Theory)에 있다. 이 이론은 정확한 데이터나 수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발견한 통찰과 구체적 체험에 기댄다.

‘밀크셰이크 딜레마’는 단적인 사례다. 더 많은 밀크셰이크를 팔기 위해 패스트푸드 체인은 핵심 소비자군의 피드백을 얻어 ‘씹는 맛을 더 내고’, ‘값을 더 내리고’, ‘초콜릿을 더 넣는’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엔 질문을 달리했다. ‘사람들이 생활에서 어떤 할 일이 발생해 그들이 이 매장에서 밀크셰이크를 고용하는가’

관찰 결과 고객들은 모두 동일한 할 일을 갖고 있었다. 고객은 2시간이 넘는 통근길 적적함을 덜어줄 만한 여러 ‘경쟁 제품’(바나나, 도넛, 커피, 과자, 베이글 등) 중 출근 전 이 음료가 편의성과 허기 충족 면에서 우위를 차지한다고 여겼다. 밀크셰이크는 세대나 연령과 상관없이 오전의 해야 할 일을 해주고 있었던 셈이다.

아이들을 위한 오후의 밀크셰이크는 장난감 가게나 농구공 던지기 같은 제품과 경쟁했다. 패스트푸드 체인이 해결해야 할 이노베이션의 방향은 정해졌다. 더 맛있거나 건강한 셰이크가 아닌 출근길이나 아이들에게 맞는 역할의 셰이크 제조가 그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적합하지 않은 단일한 제품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경향이 높다는 점에서 소비자 행동에 대한 객관적 데이터는 종종 착오를 일으킨다. 이를 무시하면 ‘큰 고용’(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는 순간)에만 집중하고, ‘작은 고용’(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하는 순간)은 놓치기 십상이다.

이노베이션이 쉽게 실패하는 것은 ‘구매 순간’에 집착해 제품을 보다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고 해고된 제품을 어떻게 대체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페덱스, 구글, 스타벅스, 우버, 디즈니 등은 이제 모두 소비자의 핵심적인 할 일 위주로 통합된 목적 브랜드로 “구글하세요” 같은 동사로 사용될 정도로 일상화됐다. 하지만 이런 회사들이 성장을 거듭할수록 제품을 고용한 이유 대신 다시 스프레드시트의 오차 없는 정확성에 굴복해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저자는 “데이터는 현상이 아니라 현상을 재현한 모상에 불과하다”며 “관찰이나 통찰 같은 질적 데이터의 신뢰를 통해 성공적인 이노베이션의 인과관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일의 언어=클레이턴 크리스텐슨 외 3명 지음. 이종인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332쪽/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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