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판에 출석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머니투데이DB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존재와 영향력을 언제 알았는지, 부정한 청탁과 대가 관계가 있었는지를 두고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공개된 진술들을 토대로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다.
◇최순실 사위도 몰랐던 최씨 영향력…李 부회장은 언제 알았을까=1~3차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특검과 변호인단이 대립했던 것 중 하나는 이 부회장이 정유라씨와 최씨,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언제 알았는지에 대한 문제다.
3차례의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40여명의 참고인들의 진술조서가 공개됐지만 언론을 통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기 전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관계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진술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최씨의 존재는 한때 사위였던 신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로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 측 역시 지난해 언론에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불거질 때쯤에서야 최씨의 존재를 알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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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서증조사는 물론 증인 및 피고인 신문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한 대립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19일부터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공판기일이 기존 주 2회에서 주 3회로 늘어나면서 공방전은 속도를 더욱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최 전 부회장은 이 부회장의 '멘토'…보고·지시받는 관계 아닌 의견 공유 관계"=그동안의 진술을 종합하면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은 이 부회장보다는 좀더 이른 2015년 8월초 최씨와 정씨의 존재를 인지했다.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가 승마훈련 지원 문제로 독일 출장 후 귀국한 뒤다.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 역시 7월말 독일에서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로부터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관계를 알았다고 진술했다.
박 전 사장과 황 전 전무로부터 당시 상황을 전해 들은 최 전 부회장은 최씨의 승마지원 요구에 대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리하라"고 판단 및 지시했다는 것.
최 전 부회장은 이같은 구체적인 정황을 이 부회장에게 즉각 보고하지 않았다. 최 전 부회장은 즉시 보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어차피 (정씨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하는데 보고해도 어쩔 수 없고 이 부회장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최 전 부회장은 다만 2016년 2월,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독대 직전에 "좋은 말을 사줬고 선수들 훈련비도 대주고 충분히 문제없게 해뒀으니 야단 안 맞을 것"이라라고 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은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알았습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최 전 부회장이 즉각 보고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표현을 바꿔가며 수차례 질문했지만 최 전 부회장의 진술은 일관됐다. 특검은 '전형적인 총대 메기'라고 지적했지만 변호인단은 그룹 내 서열관계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알기 쉬운 예로 삼성 서초사옥 내 집무실의 위치를 곁들여 설명했다.
삼성 서초사옥 고층부는 미래전략실이 해체되기 전까지 200여명에 달하는 미전실 임직원이 사용하던 공간이다. 이 때문에 '삼성의 심장부'라 불렸던 곳이다.
◇이건희 회장 집무실인 42층의 상징성=이 건물의 최고층부인 42층에 위치한 집무실은 단 2곳이었다. 현재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과 최 전 부회장의 집무실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집무실은 바로 아래층인 41층이다.
41층과 42층은 이동할 때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35개의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상징적 위치였다. 기획팀을 비롯해 대관업무를 총괄했던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집무실은 40층에 위치했다. 41층까지 엘리베이터로 올라가 42층으로는 걸어서 이동한다.
최 전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 사실상 서열 1순위로 불린 인물이다. 1977년 삼성물산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샐러리맨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 지위까지 올라 삼성 내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이건희 회장으로부터의 신임도 두터워 이 부회장에 대한 경영수업도 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전무직에 올랐던 2007년에 이미 최 전 부회장은 사장직을 맡고 있었고 이 부회장보다 먼저 부회장직에 올랐다. 즉 이 부회장이 오너 일가라고 해서 '멘토' 격인 최 전 부회장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신뢰관계가 오랜 기간 형성돼온 것으로 보여진다.
삼성 내부를 잘 아는 관계자는 "최 실장은 엄밀히 말하면 이 부회장의 비서실장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이라며 "이 회장이 와병 중이긴 하지만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지시가 아니라 이 회장의 지휘선상에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 회장의 와병 이전에는 회의석상에서 이 회장의 바로 곁은 최 전 부회장의 자리였고 이 부회장 자리는 다른 팀장들 쪽에 있을 정도로 삼성 내부의 지휘계통은 명확했다고 전했다.
승마지원이 논의된 시점은 이 회장이 쓰러진 직후 삼성 내 혼란기였고 당시 업무는 최 전 부회장이 필요한 수준에서 결정하고 이 부회장에게는 부담을 줄여주던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 전 부회장은 진술조서에서 "이건희 회장을 대리해 삼성그룹의 경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며 "제가 책임을 지고 있고 중요 현안만 이 부회장에게 공유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삼성그룹의 중요 현안을 (이 부회장에게) 보고하고 지시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이 부회장은 후계자이고 중요 현안에 대해 정보를 공유한다"며 "(이 부회장은 후계자로서) 지금은 좀 과도기적(인 시기)"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