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김현정
지난달 23일 정부와 국책은행은 국민연금이 보유한 3900억원어치의 회사채 절반을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절반은 3년 유예기간을 둔 6년 만기 회사채로 바꾸는 채무조정안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이 안에 찬성하지 않으면 최대 60조원의 경제피해가 예상된다는 암묵적 압박이 곁들여졌다.
이후 대우조선 최대주주인 산은과 국민연금은 치열한 협상전에 들어갔다. △이번 달에 만기가 도래하는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우선상환 △공신력 있는 제3의 기관을 통해 관련 자료의 검증을 추진할 수 있도록 채무재조정 결정 시기 연기 등 국민연금의 제안을 산은 측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른 투자기관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산은 측이 보내온 이행협약서는 국민연금의 기대와 달랐다. 산은은 별 내용이 없는 6줄짜리 공문을 보내왔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이동걸 회장과 약속했던 내용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다시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산은과 합의가 도출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재차 발표했고, 결국 산은은 사채권자들이 청산시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은 상환을 사실상 보장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의견을 보내왔다.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이 촉박했지만 국민연금 실무진은 이 방안을 두고 꼬박 하루가 넘게 검토했다. 그리고 사채권자집회가 열리는 17일 새벽 채무조정안에 찬성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은 "채무조정 수용이 기금의 수익 제고에 보다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찬성'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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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버티기 전략으로 회사채 일부의 회수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협상을 통해 유리한 조건을 얻어냈다. 그래서 이번 사례는 국민연금이 관치(官治)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일부에서는 국민연금의 변화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했다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됐던 것의 영향이라는 분석도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치적 영향을 고려해 의사결정이 이뤄질 경우 직원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이 기금수익률이라는 기본 원칙에 따라 이뤄져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