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상식적 경영의 함정

머니투데이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2017.04.14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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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시평]상식적 경영의 함정


일본의 대표적 종합전기전자 기업 도시바가 위기를 맞았다. 원자력사업의 부실화로 우량사업인 헬스케어 부문에 이어 세계 각국 기업이 매수전에 열을 올릴 정도로 유망한 반도체사업도 매각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도시바의 이러한 어려움을 초래한 것은 미국의 원전 건설 프로젝트의 실패다. 도시바는 2006년 원자력산업의 원조 미국 웨스팅하우스(WH)를 6600억엔에 매수해 2008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2기,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2기의 원전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했으나 이들 프로젝트가 지체돼 손실이 확대됐다.



도시바의 WH 매수금액은 일반적인 예상보다 많았으나 당시 원자력의 부활이 세계적 트렌드가 되어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도 대규모 원전 건설 프로젝트가 속속 추진되는 상황이었기에 도시바의 결정은 주식시장에서도 호재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미국의 원전 건설 규제가 강해지면서 도시바는 새로운 안전기준에 맞는 조치를 추가해야 해 건설 지연과 함께 건설대금이 눈덩이처럼 누적된 것이다.

도시바의 WH 매수 및 원전사업 확대전략 자체는 당시로선 상식적인 경영 의사결정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세계적 원전 붐 속에 도시바가 승승장구할 가능성도 있었다. 기업인 입장에서 보면 남의 불행을 무조건 비웃을 수 없는 처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세계 및 비즈니스 환경은 상식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업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상식적인 결정으로만 해결된다면 모든 대기업이 살아남고 신흥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도 한정될 것이다. 비상식적 논리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도전해 기존 비즈니스 질서를 파괴하려는 신흥기업들의 수많은 시도 중에서 성공사례가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상식적인 결정밖에 못하는 기업은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비즈니스 환경의 불확실하고 돌발적인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충격을 받고 최악의 경우 소멸되고 만다고 할 수 있다.

기업으로서는 특히 오늘날의 세계경제 환경은 불확실성이 높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미·중간 힘겨루기가 세계질서의 재편성이라는 큰 흐름에서 심화하고 있으며, 지정학적 리스크도 고조된다. 트럼프정부는 스스로 미국이 만든 국제질서의 중심인 국제무역기구(WTO) 체제에 저촉될 우려도 있는 정책까지 모색할 정도다. 앞으로 정치·경제 측면에서 기업을 위협하는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기술이나 산업의 불연속적이고 돌발적인 변화가 산업생태계를 급변시키는 불확실성도 높아지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난무하지만 그 실체와 방향에 관해 누구도 명확한 최종 목적지를 예견할 수 없을 정도로 현재는 불확실한 혁신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제까지 당연했던 상식이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 사업을 고도화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300년 기업을 향해 계속 성장하는 듀폰은 시나리오 분석기법을 동원하면서 산업 및 글로벌 경제트렌드를 조망한 결과 석유화학 등 기존 흑자 사업도 처분하면서 농업·식품, 바이오, 첨단소재에 집중하는 전략을 결정했다. 이와 같이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같은 현상이라도 남들이 보지 못한 가설을 찾아내고 사업을 창조해 나가는 기업가 마인드가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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