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병의 휴머노미]기업가정신에 대한 변명

머니투데이 강호병 뉴스1 부국장 겸 산업1부장 2017.04.11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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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의 벽을 11년째 넘지 못하고 있다. 2%대 성장도 버거울 정도로 성장엔진이 차갑게 식어서다. 최근 5년 성장률이 3% 넘긴 적은 2014년 한 번뿐이다.

투입할 생산요소가 없어서도 아니다. 역설적으로 투입할 자원은 넘쳐난다. 돈은 널려 있고 일하고 싶은 사람도 많다. 적어도 국내에선 돈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투자를 기피한다는 것인데 수요 부족 탓으로만 돌리기도 힘들다. 저성장 국면이라고 해도 신성장 사업은 많다. 그보다 관행적이든, 제도적이든 공급 측면의 요인이 더 큰 질곡으로 오고 있고 또 극복해야 할 과제라는 생각이다.



‘기업가 정신이 실종됐다’는 데서 원인을 찾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수긍하기 힘들다. 남들이 따라오기 힘든 초기술로 시장을 선도한다는 전략을 가진 삼성전자는 1년 영업이익 50조원을 바라본다. 전략에 맞춰 거액을 들여 선행 투자한 결과다. LG전자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로 신기원을 열었고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도 선도하고 있다.

불모지에서 맨주먹으로 생겨나 대기업 반열에 오른 곳도 있다. 항체의약품 기업 셀트리온이 대표적이다. 그것은 글로벌 시장의 틈을 간파한 1명의 기업가에 의해 생겨났다. 지금도 수많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성공 가능성을 믿고 도전에 나서고 있다.



성장을 원하지 않는 기업은 없었다. 크든 작든, 공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이유로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표현이 옳지 하기 싫어서 안 한다는 평가는 온당치 않다. 솔직히 공장을 지어도 밖에 짓는 것이 문제지 공장 자체를 안 짓는 것은 아니다.

올 2월 세계기업가정신발전기구(GEDI)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기업가정신지수는 세계 137개국 중 27위로 평가됐다. 그런데 이 수치가 상위권에 들지 못한 것은 한국 기업의 혁신본능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항목중 제품혁신·공정혁신·모험자본·기술흡수·위험용인 등 기업 본연의 혁신성 항목에서는 만점이거나 그에 가까운 점수를 얻었다.

그러나 기회포착이나 경쟁환경, 문화적 지원 등 사회성이 강한 요인은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사실상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는 평가와 다를게 없다.


특히 기업가에 대한 사회의 호감도를 뜻하는 문화적 요인은 지수가 산출된 2012년 이후 계속 나빠졌다. 이는 성공한 기업가를 곱게 보지 않는 정서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그간 규범 경영, 주주 가치 중시 경영에 어긋나는 행위가 수시로 나타난 것이 이 같은 인식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기업들이 변신하려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당장 기업 오너가 모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일제히 전문경영인이 등단한다고 새로운 ‘선’이 찾아올지 의문이다. 어쩌면 더 독하게 쥐어짜는 경영이 실현될지 모른다. 또 주인 없는 회사가 외압과 비리에 약하고 기업가정신이 더 떨어지는 경향도 있다.

파국으로 끝난 박근혜정부는 경제정책 중에서 난제로 꼽히는 2가지를 시도했다. 규제 개혁과 노동구조 개혁이 그것이다. 정권의 비극적 몰락으로 그냥 파묻히고 말았지만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로 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숙제인 것은 맞다.

최근 K뱅크,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이 생겨나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3일 출범한 K뱅크는 출시 3일 만에 가입자 수 10만명을 돌파했다. 그런데 이 같은 사업체는 저절로 생기지 못한다. 선행법에 근거가 없어서다. 정부나 국회가 입법의 형태로 판을 깔아준 뒤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많은 경우 우리나라는 이렇다. 때론 여론에 밀려, 때론 나중에 생길 부작용을 걱정하느라 업태와 사업의 자연 발생성을 용납하지 못한다. 미국처럼 법에 하지 말아야 할 것만 정의한 시스템을 가진 나라들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나 기업가정신지수 상위권에 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업하기 어려운 데서 기업가정신이 마음껏 표출되기는 어려운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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