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임종룡을 위한 변명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2017.04.05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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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잘 모른다. 소규모 자리에서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것은 3번뿐이다. 잘 모르는 이 남자에게 그제 문득 관심이 생겼다. 금융위원회를 담당하는 부장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늘 있던 정책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그제 3일,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의 출범식이 있었다. 임 위원장이 축사를 했는데 은산분리 완화에 대해선 전혀 말이 없었다. 그간 인터넷전문은행이 성공하려면 은산분리 완화가 꼭 필요하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국회의원들을 직접 설득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외다. 게다가 그 자리엔 은산분리 완화를 위한 은행법 개정이나 특별법 제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국회의원이 5명이나 참석했다.



왜 절호의 기회인데 은산분리 완화를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았을까. 대선 때까지 한달 남짓이 그에게 남은 임기다. ‘인터넷전문은행을 탄생시키기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으나 미완으로 남기고 갈 때가 됐다. 그러니 이 자리에 참석한 의원들과 케이뱅크 은행장 및 주주사 여러분이 뒷일을 마무리해주길 바란다.’ 이런 무언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그는 지난 2월까지도 의원들과 접촉하며 마지막까지 은산분리 완화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2조9000억원의 신규 자금 투입과 대규모 출자전환이라는 큰 결정을 해야 했을까. 대우조선 유동성 문제가 심각하다고 해도 이리저리 단기 유동성을 융통하면 간신히 4월 만기 도래 채권까진 상환하고 대선 때까지 버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정권으로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폭탄을 안게 되는 셈이다. 임 위원장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맡은 역할을 다하는 쪽을 택했다.



임 위원장과 같은 헬스장을 다닌다는 금융계 한 인사가 사우나에서 봤더니 임 위원장 등에 뻘건 부황 자국이 가득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하겠어요” 했다. 임기도 얼마 안 남았고 금융계에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하다 차기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더불어민주당 눈 밖에도 났는데, 그 스트레스를 감당하며 마지막까지 맡은 책임을 다하려는 그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광화문]임종룡을 위한 변명


대학교 1학년 때 배운 교양영어 1과 제목이 ‘쇼는 계속돼야 한다’(The Show Must Go On)‘이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아무리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어도 관객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대에 올라 맡은 배역을 담당해내야 한다는 내용이다. 우리에겐 언제나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을 맡았다면 어떤 변명도 하지 말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다. 임 위원장은 이미 감독도 떠나 조만간 막을 내릴 쇼지만 다음에 무대에 오를 사람들이 좀더 편하게 공연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맡을 역할을 다하자는 심정일 것이다.

임 위원장은 자신이 배역을 맡은 쇼가 끝나도 끝난게 아닐 수 있다. 한진해운과 대우조선 구조조정,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며 또 다시 국회에 불려 나가야 할 수도 있다. 임 위원장이 대우조선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한 뒤 여러 차례 “책임을 져야 한다면 내가 지는게 맞다. 져야할 책임이 있다면 피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지금 대우조선 문제도 미루지 않겠지만 훗날 책임론이 불거질 때도 변명하거나 회피하지 않겠다는 뜻일 것이다.


임 위원장 등에 가득하다는 부황 자국은 막중한 책임과 끊임없이 제기되는 비판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속을 추스르며 버텨 내려는 그의 고육책인지 모른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그가 기억해줬으면 하는게 있다. 마지막까지 맡은 바 소임을 피하지도 미루지도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공직자로서 그를 조용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소리 없는 응원의 기가 임 위원장에게 또 다른 버팀목이 되어 국가 경제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대우조선 해법이 도출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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