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몸값 못하는 펀드매너저와 'ETF 역설'

머니투데이 전병윤 기자 2017.03.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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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중견 자산운용사 대표인 A씨는 투자한 기업의 오너와 만날 기회가 있을 때면 사무실을 찾아간다. 펀드매니저로 잔뼈가 굵은 A씨는 직원 표정이나 사무실 분위기를 둘러보기도 하지만 오너 책상에 놓인 모니터를 유심히 살펴보는 습관이 있다. 모니터에 HTS(홈트레이딩시스템)가 켜있으면 적신호로 받아들인다. 더구나 HTS에 자사의 주식 차트가 띄워져 있으면 다음날 출근 즉시 주식을 내다 팔기로 결심한다고 한다.

"주가란 자연스레 기업 실적을 따라가는 것인데, 사장이 책상에 앉아 주가부터 신경 쓰면 그 기업은 망가지기 마련"이란 게 A씨 철학이다. 일견 타당한 측면도 하지만 확대해석이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유사한 사례는 많다. 가치투자로 유명한 펀드매니저 역시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해당 기업의 오너나 CEO(최고경영자)를 만난다. 그는 식사를 하면서 마치 취조하듯 사장이 요즘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캐묻는다. 건강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골프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 건 아닌지, 자녀와 관계는 원만한지도 살펴본다. 지속가능한 기업이란 확신이 들어야 투자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그 까탈스런 기준이 유효한지보다 인간적인 초조함이 먼저 느껴진다. 미래에 큰 수익을 안겨줄 숨은 기업을 고르려는 펀드매니저의 임무는 생각보다 고단하다. 누구나 그렇듯 펀드매너저도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안경'을 가져야 기업 가치도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을 운용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식시장은 변덕스럽기 마련인데 운용철학을 내팽겨치고 시류를 좇으면 수익률이 떨어지는 건 물론 투자자와 신뢰마저 처참히 깨지기 일쑤다.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만나 말투나 행동, 습관이라도 관찰하려고 하는 그 절박함이 펀드매니저가 받는 고액 연봉의 당위성이다.

수년간 증시가 박스권에 갇혔다. 주도주가 바뀌면서 오르락내리락 반복한 탓에 상당수 주식펀드가 비용을 상쇄할 수익을 내기조차 버겁다. 버티지 못해 운용철학을 저버린 펀드매니저가 속출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ETF(상장지수펀드)는 더욱 빠른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ETF는 특정지수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수익을 내는 인덱스펀드를 증시에 상장한 걸 말한다. 예컨대 코스피200 ETF는 코스피 등락률과 거의 동일한 수익을 내면서 보수가 낮아 일반 주식펀드에 비해 양호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ETF 일평균 거래량이 코스피 시가총액의 23%를 차지했을 만큼 급성장하고 있다.


수익률이 시장 흐름에 뒤쳐질 위험을 줄이고 거래 편의성까지 높인 ETF의 경쟁력을 감안하면 앞으로 펀드매니저의 자의적 판단으로 운용하는 액티브펀드를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으로 말해 ETF 영향력이 급증하면, 해당 지수에 포함된 상장사 주가는 기업실적과 무관하게 ETF로 돈이 들어오고 빠질 때마다 상승하거나 하락하게 된다.

같은 기업을 두고 다른 철학을 가진 펀드가 매수와 매도로 부딪힐 일이 없다. 당연히 펀드매니저는 발품을 팔고 고민할 필요 없이 해당 ETF가 타깃 지수만 잘 따라가도록 종목을 꾸려 놓으면 된다. 결국 ETF 수익률은 스스로의 자금 유출입 크기로 결정되는 셈이다. ETF의 역설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우보세]몸값 못하는 펀드매너저와 'ETF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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