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대우조선 살 길과 국민연금의 '구성의 오류'

머니투데이 이학렬 기자 2017.03.1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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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생사 여부가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에 달렸다?

금융당국이 대우조선에 신규자금을 지원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모든 이해당사자의 고통분담이다. 여기에서 이해당사자란 대우조선뿐만 아니라 국책은행, 시중은행 등 채권단과 사채권자를 포함한다. 특히 대우조선 회사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의 선제적인 고통분담이 필요하다. 금융당국은 사채권자의 채무재조정이 없으면 통합도산법에 따른 법정관리(기업회생)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른 워크아웃을 결합한 P-플랜(프리패키지플랜)도 취한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2015년 10월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하면서 대우조선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했고 이번에 약 3조원을 추가 지원하면서도 추가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할 예정이다. 대우조선에는 대우조선 노동조합도 포함된다. 채권단은 1년6개월전 대우조선 노조에 '자구안 동참' 동의서를 요구했고 노조는 동의서를 제출했다.



채권단도 고통을 분담한다. 출자전환 등 채무재조정에 국책은행은 물론 시중은행도 동참한다. 신규 자금 대부분을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을 부담하지만 시중은행도 고통분담에 빠질 수 없다. 금융당국은 국책은행과 함께 신규지원과 출자전환 규모를 조율하고 있고 시중은행에도 고통분담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2015년 10월과 달리 이번에는 사채권자도 넘어야할 산이다. 당장 4월부터 2019년 4월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대우조선 회사채는 1조3500억원이다.



산은과 수은 등 채권단이 대우조선에 신규자금을 넣었더니 그 돈이 그대로 회사채를 보유한 투자자한테 간다면 신규자금 지원의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대우조선 회사채에 투기자금이 몰린 만큼 국민 혈세를 투기꾼한테 줄 수 없다는 게 국책은행의 생각이다.

하지만 대우조선 회사채의 절반 정도인 7000억원을 가지고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는 투기꾼이 아니다. 특히 국민연금이 손실을 보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주식에서 평가손실이 나도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데 비교적 안전하다는 채권 투자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국민연금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당장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구성의 오류'에 빠지면 더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구성의 오류'란 각각의 개체들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더라도 전체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나 우정사업본부가 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대우조선이 법정관리에 가기 전까지는 원리금 상환 유예 등 채무재조정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채무가 동결되는 법정관리 가능성이 낮은 상태에서 채무 재조정에 동의하면 손실을 보기 때문이다. 반면 채무재조정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법정관리에 가지 않으면 원리금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채무재조정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법정관리에 가는 최악의 경우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는 스스로 채무를 재조정했을 때보다 더 많은 손실을 봐야 한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직접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를 설득하지 않지만 자발적인 채무재조정을 바라고 있다. 원금을 감면해주면 좋겠지만 원리금 상환 유예만 동의해도 대우조선 입장에서는 한시름 놓을 수 있다.

[현장클릭]대우조선 살 길과 국민연금의 '구성의 오류'


채권단 관계자는 "대우조선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유동성 대응방안에서 최상은 사채권자들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이전에 채무재조정에 동의하는 것"이라며 "사채권자들 역시 '구성의 오류'에 빠지지 않아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은 다음달초 회사채 처리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사채권자 집회를 열기로 했다.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를 비롯한 사채권자들이 '구성의 오류'에 빠지지 않아야 대우조선이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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