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기 쉬운 3대 투자원칙..장기투자·바텀업·성장성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2017.03.18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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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투자노트]

“유명한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나 펀드매니저가 하는 말 중에 ‘이건 아닌데’ 싶은 게 적지 않습니다. 투자 철학의 차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주식 투자를 상당히 오도할 수 있어 염려스럽기도 하고요.”

자산운용사 A사장의 말이다. 자산운용업계 종사자들의 말 상당 부분이 성공하는 투자는커녕 오히려 실패하는 투자로 이끈다면 A사장의 말도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코스피가 2100을 넘어서 사상최고치 경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데 내 주식은 왜 이래’라고 허탈해 하는 사람들에겐 자신의 투자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참고로 A사장은 2014년말~2015년 하반기 바이오·화장품주 랠리 때 고전하다 지난해 경기민감 대형주가 살아나면서 한숨을 돌렸다. A사장은 이른바 ‘용과장’(용감한 30대 매니저)이 득세하던 바이오·화장품주 랠리 때 자신이 어려움을 겪었던 원인을 설명하며 전문가들이 말하는 투자의 원칙 중 가려 들어야 하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속기 쉬운 3대 투자원칙..장기투자·바텀업·성장성


<b>1. 좋은 주식은 사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b>=이른바 장기투자의 환상이다. 워런 버핏을 비롯해 성공한 투자자들은 모두 장기투자를 강조한다고 알려져 있다. 버핏은 코카콜라 같은 주식을 수십년간 장기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대해 A사장은 “미국이나 중국처럼 내수시장이 크고 세계 표준을 만들만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에선 수십년 장기투자가 유효할지 모르지만 소규모 개방경제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주식은 장기투자라 해도 기껏해야 3년”이라고 말했다.



2년 전만 해도 화장품주는 중국 시장을 등에 업고 고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비이성적인 수준까지 급등했다. ‘용과장’이란 말이 나온 것도 3~4배 오른 이런 주식이라도 성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밸류에이션에 상관 없이 사들이는 30대 매니저들의 용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화장품주는 중국이 사드 배치에 대한 경제 보복을 취하면서 급락한 상태다. 장기 보유하면 회복할 것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이미 반토막 난 주식이 원금을 회복하려면 두 배가 뛰어야 한다.

외풍을 심하게 받는 국내 여건상 한번 사놓고 잊고 지낼만한 주식은 거의 없다. 삼성전자가 있지 않냐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시대 변화도 감안해야 한다. 고성장이 막을 내리고 저성장에 진입한 가운데 기술 변화가 빠른 현대사회에선 방망이를 짧게 잡고 수시로 내가 보유한 주식의 기술환경, 대외여건 등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b>2. 거시전망은 잊고 종목 분석만 철저히 하면 된다</b>=버핏은 경제에 대해 구체적인 전망을 하지 않는다. 기업만 보고 주식을 산다. 매크로를 분석한 뒤 개별 종목을 보는 톱다운(Top-down)이 아니라 개별 종목 분석에 중점을 두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이다. 바텀업이 우월한 것처럼 여겨지며 증시 전망을 물어보면 매니저들이 앵무새처럼 “전 바텀업을 해서 거시는 몰라요”라고 답하기도 한다.


A사장은 한국에서는 거시 전망을 간과하는 바텀업이 환상이라고 했다. 수출기업에 투자하면서 환율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고 석유화학주나 조선주에 투자하면서 유가 전망을 빼놓을 수 없다. 내수기업이라 해도 수입의존도가 높고 내수시장이 작아 구매력은 떨어져 원자재 가격에 흔들린다. 미국의 내수기업과 다르다.

불과 2년 전 바이오·화장품주가 득세할 때만 해도 용과장은 물론 유명 운용사 사장조차 “나는 삼성전자는 단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자랑처럼 말했다. 삼성전자가 만드는 휴대폰, 반도체 등은 막대한 설비 투자가 필요한데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 앞으로도 성장할 것이란 확신이 없어서란 이유다. 삼성전자가 파죽지세로 오르고 있는 지금 돌아보면 이들은 경기 흐름과 업황 사이클을 간과했다.

A사장은 “기업이란 경제 생태계 속에 존재하는데 어떻게 경제 생태계를 보지 않고 기업만 보고 투자할 수 있느냐”며 "매크로 전망은 어렵고 틀릴 가능성도 있지만 종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텀업만 강조하는 전문가는 너무 믿지 말라는 조언이다.

<b>3. 성장성은 높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한다</b>=“사실 저도 한미약품을 보유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다고 판단해서 2015년 상반기에 팔았어요. 급등 직전에 판거죠. 바이오·화장품주 랠리 때 PER(주가수익비율) 80배, PBR(주가순자산가치) 20배짜리 주식이 오르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현재 한미약품 주가는 A사장이 팔았던 수준보다 더 밑으로 떨어졌다. A사장은 “바이오·화장품주 랠리 때 상대 수익률이 저조해 힘들었을 뿐 마이너스가 난 것은 아니었다”며 “시장이 언제 꺾일지 타이밍을 맞출 수는 없기 때문에 밸류에이션이 높을 때 성장성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매도해 차익을 실현했던게 옳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무도 주가가 어디까지 오를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밸류에이션을 무시하고 영원히 갈 수는 없다. 너무 일찍 팔아 후회하는 경우가 많지만 잃지 않는 투자를 위해선 자신이 판단하는 적정 밸류에이션에서 차익 실현하고 성장성이 밸류에이션을 이긴하는 말들이 들릴 때 추격 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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