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휴먼

머니투데이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2017.03.07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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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시평]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휴먼


지난해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은 인공지능(AI)이란 말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의 유행을 불러왔다. 이 용어가 2~3년 전부터 사용됐음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선 유독 빠르게 확산되는 셈이다. 4차 산업혁명은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사이버 물리적 시스템, 인공지능 등으로 구성된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과 기계화로 대표된다. 증기기관이란 기계의 발명으로 인간의 이동성이 급격히 커져 오늘과 같은 글로벌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에너지 발명과 사용으로 가능했다. 전기에너지 발명으로 24시간 활용이 가능해지면서 시간적 연속과 반복이 이루어지는 지금과 같은 삶의 방식이 생겨났다.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와 인터넷 발명과 사용으로 가능했다. 앞의 두 차례 산업혁명의 성과를 바탕으로 3차 산업혁명은 삶의 스케일 자체를 급격히 대규모화하면서 통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인간의 활동은 이젠 물리적 시공간을 넘어 가상의 시공간으로까지 파고들면서 그 스케일이 급속히 확장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이런 점에서 3차 산업혁명의 응용적 연장인 셈이다. 그래서 새 시대를 후기 정보화 시대라 부른다.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이 더욱 고도화한 것으로 사회적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 메가트렌드 수준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사이버 물리적 시스템, 인공지능은 모두 각자 메가트렌드 수준의 사회적 변화를 불러왔다. 이 메가트렌드들이 융합하면 그로 인한 사회적 변화는 지금의 지식과 경험으로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1차에서 3차에 이르는 산업혁명은 인류의 삶에 많은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4차 산업혁명은 그 이상이 될 것이란 믿음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의 존재 자체를 재규정하고 부정하는 결과마저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앞의 혁명들과 다르다.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 기술의 활용은 그 전제가 인간의 제한된 능력을 대신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할 수 없는 부분까지 파고들어 인간을 대신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기계인간에 의한 생명인간(노동)의 식민화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할 수 있다. 인공지능 확산으로 일자리의 축소는 초기현상일 뿐이다. 세계경제포럼 등은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사라질 직종이 미국에선 47%, 한국에선 63%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보다 엄중한 변화는 인간과 사물(기계 등)이 하나로 결합하는 혼종적 인간의 출현이다. 기계에 의해 진화한 인간이란 점에서 이는 탈 인간이라기보다 후기인간, 즉 포스트휴먼(post-human)에 해당한다. 기계, 코드, 소프트웨어, 텍스트, 프로그램, 데이터베이스 등과 같이 기계적이고 사물적인 객체의 요소들이 사람의 육체, 감각, 정체성, 관계성의 한 부분으로 들어와 한 몸으로 진화한 인간이 포스트휴먼의 모습이다. 이러한 포스트휴먼이 과연 어떠한 유형의 인간이고, 어떠한 질적 삶을 살아가며, 어떠한 행복을 느낄지는 지금으로선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본래적 의미가 상실되고 변형될 것이라는 점이다. 인간과 결합된 기계나 사물이 인간 이상의 지능과 능력을 갖게 되면 기계에 의한 인간의 식민화는 단순히 공상소설 속의 얘기만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맞이할 준비를 과연 어느 정도 하고 있을까.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할 수 있는 국가능력을 평가했을 때 한국은 전 세계 국가 중 25위에 불과하다. IT 강국으로 믿었던 것에 견준다면 초라한 성적표다.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테크노피아에 도취되기 보다 인간에 관한 존재론적 성찰이 먼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얘기엔 사람에 관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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