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WTO 시스템 와해시키나…무역정책 법적 검토 지시

머니투데이 이미영 기자 2017.02.28 03:48
글자크기

트럼프 정부 보호무역주의 강행 시사…WTO 탈퇴 여부에 '묵묵부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뉴스1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뉴스1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국경조정세·관세 인상 등 보호무역정책을 도입하기 전에 관련 정책들이 WTO(세계무역기구) 제소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여년 전 주도적으로 WTO를 설립해 자유 무역을 주창했던 미국의 입장이 180도 바뀌면서 스스로 WTO 와해를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미국무역대표단(USTR)에 중국, EU 등 무역국가들에 대한 일방적 무역 정책을 도입할 경우 생길 수 있는 법적 분쟁 리스트 작성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WTO는 1995년 설립된 기구로 무역 분쟁을 사전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제도다. WTO 가입국들은 상대국가가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난 거래를 하거나 무역 정책을 도입할 경우 이를 WTO에 제소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법적 분쟁을 고려하면서까지 보호무역 정책을 강행할 것이란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취임 이후 트럼프 정부는 보호무역주의를 현실화하기 위해 종횡무진했다. 2010년부터 미국이 WTO에 보다 공격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로버트 라이시저가 미국무역대표로, 로버트 로스를 상무무 장관으로 인선됐다. 트럼프 선거캠프 당시 미국의 무역정책을 주도했던 피터 나바로는 미국 무역위원회 위원장으로 낙점됐다.



이들 인사는 보호무역 정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수출 기업에게 법인세를 인하하고, 수입 기업에게 법인세를 인하하는 내용이 골자인 국경세 도입이 추진 중이다. 다만 현재까지 인준된 유일한 인사인 나바로 위원장이 현재 무역 정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라이시저 USTR 대표 후보는 이번주, 로스 상무부 장관 후보는 이달 말 인준이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국이 WTO 마저도 탈퇴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USTR 관계자는 즉답을 피하며 "USTR 새 대표가 인준되기 전까지 어떠한 답변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의 WTO에 대한 회의적 시각에는 미국 철강업계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WTO는 미국 철강 산업 주도 아래 진행된 반덤핑 제재에 강하게 반대해왔다. 트럼프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 무역정책을 맡았던 댄 디미코 철강업체 누코 대표는 줄곧 "WTO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회의적인 의견을 견지했다.


트럼프 정부는 WTO에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디미코 대표는 "WTO는 존재하는 무역기구이며 우리가 협상해야 하는 대상이다"며 "우리가 반덤핑 제소를 포함해 WTO내에서 여러가지 분쟁에 제소했을 때 WTO가 이를 기각한다면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정부의 입장이 '근시안적'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미국이 수십년 간 공들여 만든 글로벌 무역 체계 근간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 한 관료는 "트럼프 정부는 미국 경제가 더 경쟁력있고 효율적으로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며 "미국 정부는 그동안 많은 국가들을 설득해 규정에 입각한 무역시스템을 만들었고, 트럼프 정부는 글로벌 무역체계에서의 미국 리더십을 포기해선 안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미국의 이같은 보호무역정책에 대비해 WTO 가입국들은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국경조정세를 현실화하면 EU는 WTO를 통해 미국을 제소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연간 약 3850억달러(438조3225억원)의 무역보복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역대 WTO 최대 보복규모의 약 100배에 달한다. EU는 WTO 조항에 명시된 제품에 대한 세금환급은 받을 수 있지만 이익에 대한 세금환급은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을 근거로 내세울 것이란 전망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