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펌에 뺏길라', 대형로펌이 신입변호사 급여인하 못하는 이유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17.02.24 03:39
글자크기

[the L리포트][악화일로 변호사시장]④ "인재유치 경쟁, 급여인하 불가", 대형펌vs非대형펌간 구조적 분화 심화우려도

편집자주 2008년 1만명을 돌파한 변호사숫자가 7년만인 2015년엔 2만명을 넘어섰고 3년후 2020년엔 3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머니투데이 더엘(the L)은 법률 소비자와 공급자가 상생하는 법률시장이 만들어지기 위한 방안을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변호사들의 취업환경이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서도 국내 대표 대형로펌들의 올해 신규채용 규모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 배출규모가 늘어나면서 업계 전반에 걸쳐 급여수준 하락 등 취업조건의 악화가 본격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로펌에서는 이렇다 할 악화조짐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대형로펌 소속이냐 아니냐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3일 로펌업계에 따르면 한국변호사 수 기준 국내 1위인 김앤장은 2015년 40명, 2016년 28명의 신규변호사를 채용한 데 이어 올해도 비슷한 수준인 30~40명선에서 신규변호사를 채용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김앤장에 신규로 입사하는 이들의 수는 현재 김앤장 변호사 수(606명, 대한변협 홈페이지 기준, 이하동일)의 약 5~7% 수준이다.

변호사 수 2위인 광장 역시 현재 등록된 인원(407명)의 약 7% 수준인 30명대의 신규변호사를 채용한다는 방침이다. 태평양(382명) 세종(306명) 화우(255명) 율촌(243명) 등의 인사담당자들도 각각 적어도 20명대 중반선에서 많으면 30명대 초반 수준의 신규변호사를 채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신규채용 규모는 각 로펌의 사업그룹별 인력수요를 합산한 수치인데 예년과 비슷한 수치라는 게 공통적인 답이었다.



대형로펌 A사에서 채용업무를 담당하는 한 변호사는 "거시경제 상황이 만만치 않음에도 안정적으로 성장세가 이어져오고 있다"며 "각 팀별 인력수요를 받아보는데 이를 합산하면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조금 늘어난 수준을 기록 중"이라고 말했다.

◇대형로펌들의 채용절차, 로스쿨 1~2년생 인턴십 후 채용
아직 연수절차를 밟고 있는 사법연수원생들이 남아있고 군 복무 중인 연수원 출신들도 다수 있음에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정착되면서 대형로펌의 전형절차도 로스쿨 출신 중심으로 점차 변모해가고 있다. 과거 사법연수원 2년과정에서 1학년 전형을 마친 후 1학년 연수원 성적을 기준으로 채용을 결정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로스쿨에서도 총 3년 과정 중 실제 채용이 결정되는 시기는 2학년 때다.

전국 25개 로스쿨에서 1학년 동계휴강 또는 2학년 하계·동계 휴강을 맞이한 로스쿨생들이 인턴과정에 응모한다. 로펌마다 다르지만 인턴십 전형과정을 통과해 실제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과정부터가 경쟁률이 높다.


전국 각지의 로스쿨에서 한 개 학년을 이수 중인 학생 수만 해도 2000명 남짓한 수준이다. 이 중 실제 국내 6대 로펌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경험을 가질 수 있는 이들은 각 로펌별로 120~150명 수준이다. 6대 로펌에서 인턴 기회를 잡는 데까지만 해도 최소 2~3대 1의 경쟁률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일단 각 로펌별로 120~150명 중 1명으로 선발됐다고 하더라도 내부경쟁이 재차 진행된다. 각 로펌별 최종 합격자 수가 20~30명선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경쟁률은 최저 5대 1에서 최고 7대 1까지 높아진다. 인턴들은 이 과정에서 실제 실무에 투입돼 선배 변호사들의 일을 보좌하는 동시에 각종 과제평가를 통해 본인의 역량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로펌별로 별도의 시험을 치르는 곳도 있다.

사법시험 출신으로 한 대형로펌에 소속돼 있는 모 변호사는 "과거만 해도 사법연수원생이 로펌에서 시보생활을 하는 것은 잠깐의 휴식과도 같았고 과제평가 역시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며 "이제는 인턴근무 과정의 한순간 한순간이 평가로 이어지고 과제평가 역시 공간·시간 등에 엄정한 제한을 두고 치러지는 등 긴장감이 팽팽하다"고 말했다.

◇신입 급여수준, 예년과 비슷… "인재유치 경쟁치열, 인하불가"
여타 변호사 업계에서 신입변호사에 대한 '급여 후려치기'가 심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대형로펌에서 급여인하는 아직 가시화되지는 않는 모습이다. 사람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로펌의 특성상 자칫 급여수준을 낮췄다가 경쟁로펌에 우수인재를 죄다 뺏길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대형로펌 B사에서 신규채용을 담당하는 한 파트너 변호사는 "신입변호사에 대한 연봉은 과거에는 소폭이나마 오름세를 유지해왔지만 거시경제 둔화가 지속되면서 신입변호사에 대한 연봉도 현상유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며 "하지만 연봉을 의미있는 수준으로 낮추는 것과 같은 과감한 시도는 우수한 인재에 기대 돈을 버는 로펌의 특성상 감히 시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대거 시장에 투입되며 대형로펌 중에서도 한 때 급여수준을 깎으려는 시도를 했다가 오래지 않아 원상회복을 시킨 경우도 있다"며 "급여를 깎으니 우수한 인재들이 해당로펌을 기피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 비용절감 효과 이상의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대형로펌이 급여수준을 낮추는 대신 좀 더 많은 신입변호사들을 채용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아무래도 대형로펌이 여타 로펌들에 비해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짜여 있는 만큼 초임변호사의 양성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우수인재 유치를 두고 경쟁하는 대형로펌에서는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대형로펌 C사의 신규채용 담당 변호사는 "학생들의 취업규모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로스쿨 교수들이 주로 급여를 인하하고 더 많은 이들을 채용할 것을 권하곤 한다"며 "하지만 우수인재를 뽑는 게 중요하지 단지 머릿수만 늘리는 것은 로펌을 운영하고 키우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로펌 여부가 출발선 좌우, 변호사업계 분화 구조적으로 심화
일단 대형로펌에 들어가면 당장 통장으로 꽂히는 급여 뿐 아니라 여타 부수비용 부담에서도 대형로펌 이외 소속 변호사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를테면 변호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지방변호사회에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하는데 그 비용만 해도 지역에 따라 최저 300만원에서 최고 600만원에 달한다.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나 사내변호사의 경우 회사가 개개 변호사를 대신해 이 비용을 납부해준다. 이와 별도로 납부하는 월 5만원 안팎의 회비 역시 회사가 대납한다. 반면 중견·중소로펌 등의 경우 과거에는 이같은 비용을 회사 측이 대신 납부해주곤 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개개 변호사의 부담으로 처리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급여수준 뿐 아니라 변호사 자격을 유지하고 활동하는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까지도 대형로펌 변호사와 그렇지 않은 이들간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 1월 실시된 대한변협, 서울지방변호사회 등 양대 변호사 단체장 선거과정에서 대형로펌 변호사들 중에서는 "당시 후보들이 주로 내세운 공약들이 중견·중소로펌 또는 개업변호사를 타깃으로 했을 뿐 대형로펌 변호사들과 무관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변호사업계의 파편화와 분화는 악화일로의 취업환경과 맞물려 구조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정성평가 비중↑, 합격자임에도 변시탈락후 채용취소되는 경우도
인재영입과 관련한 대형로펌간 경쟁은 소위 '입도선매'식 채용으로 이어진다. 실제 대부분의 대형로펌의 인턴십에 응모할 수 있는 이들은 로스쿨 2학년생이 대부분이다. 채용이 확정된 후 해당 로스쿨 학생이 변호사시험을 통과한 후 실제 입사하기까지 1년 이상이 걸린다는 얘기다.

졸업할 때까지의 성적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채용을 결정하게 되다보니 대형로펌들이 참조하는 자료는 1,2학년 때의 1,2학기의 확정된 성적과 인턴기간 근무에 대한 평가, 과제수행 결과, 인턴기간 지도변호사의 의견 등이다. 정량적 평가보다 정성적 평가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종합격한 로스쿨생이 3학년 수료 이후 변호사시험에서 탈락해 합격이 취소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형로펌들이 스펙(학교·학점·자격 등)이나 집안배경을 보고 신입변호사를 고르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한 때 대형로펌에 소위 '고관대작'들의 자제들이 집안배경 때문에 입사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비(非)서울지역 로스쿨 출신에 대한 기회가 너무 적다는 점도 불만으로 제기되곤 한다. 비 서울지역 로스쿨생에 대한 특별전형이 알고보니 고관대작 자제를 채용하기 위한 편법루트로 활용됐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채용과정에서의 투명성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시도들도 나타나고 있다. 법무법인 세종이 5년 전부터 이력서에서 가족사항 기입란을 아예 없앤 것이 대표적이다. 자기소개란에 은근히 자신의 집안배경 등을 나타내는 문구가 보이면 감점처리하는 식의 방법을 제도화하기도 했다. 법무법인 율촌의 경우에도 이력서에 가족사항 기재여부를 선택사항으로 남겨뒀을 뿐 실제 채용과정에 이를 반영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고관대작 자제를 일부러 뽑는다? 대형로펌 생리를 모르는 소리"
하지만 채용과정의 정성평가 비중이 과도하다거나 로펌들이 일부러 전·현직 고위 법조인의 자제를 뽑으려 한다는 등 의혹은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있다. 이에 대형로펌 측은 "대형로펌의 생리를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D변호사는 "미국의 경우에도 한국처럼 우수인재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한국보다 더 이른 로스쿨 1학년생을 대상으로 채용을 확정짓는 경우가 많다"며 "로스쿨 학생에 대한 입도선매 경쟁을 자제하자는 신사협정은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형로펌 간에 이뤄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E변호사도 "로펌은 전적으로 사람의 두뇌에 의존해 매출을 내는 곳인 데다 시시각각 다른 펌과 치열하게 경쟁을 통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고관대작의 자제들이 채용된다더라도 실제 실무에서 그들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고 실제 선배변호사들도 그들과의 협업을 꺼리는 등 현상도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형로펌의 업무가 확장되면서 인력수요가 늘어나는 파트도 회사별로 구체적 사항에서는 차이를 보일지라도 일정 경향을 보이고 있다. 태평양은 공정거래 조세 지식재산권(IP) 노동 헬스케어 부문에서, 세종은 노동 조세 지식재산권 부문에서, 화우는 헬스케어 국제중재·소송 국제무역통상 부문에서 각각 인력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답했다. 율촌에서도 지난해 노동팀이 새로 출범한 이후 신입변호사를 독자적으로 모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광장 관계자는 "지난해 선발된 신입변호사들이 금융파트로 많이 배치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특정 부문에 인력수요가 더 늘어나는 쪽은 없다"며 "각 사업부문별로 고르게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인력들도 고르게 배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기사는 더엘(the L)에 표출된 기사로 the L 홈페이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기사를 보고 싶다면? ☞ 머니투데이 더엘(the L) 웹페이지 바로가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