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퇴전 각오로 좌파 척결" 김기춘·조윤선 재판에

머니투데이 양성희 기자 2017.02.0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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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공범' 박 대통령만 남겨둔 블랙리스트 수사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사진=홍봉진 기자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사진=홍봉진 기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지원 배제 명단) 작성·관리를 주도한 혐의로 나란히 구속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78)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이 7일 재판에 넘겨졌다. 이로써 이 사건 수사는 최고 윗선이자 두 사람의 공범으로 지목된 박근혜 대통령만 남겨두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날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특검팀은 이들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지난달 30일 기소한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56),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60),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53)의 공소사실에도 박 대통령을 '공모자'로 기재한 바 있다.



특검팀은 이 사건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이날 두 사람과 함께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57), 김소영 전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51)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특검팀은 지금까지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7명을 기소했는데 추가 사법처리 가능성을 묻는 말에 "마무리 차원에서 일부 인사가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좌파 척결" 재차 지시…3000여곳 '문제 단체' 지정, 8000여명 '좌편향' 낙인
특검팀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2013년 하반기부터 블랙리스트 작성을 물밑에서 주도했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과 김 전 실장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전달한 '지시 사항'이 블랙리스트의 전조가 됐다고 판단했다.



박 대통령은 2013년 9월 김 전 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며 "특히 롯데와 CJ 등 투자자가 협조를 하지 않아 문제"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무렵 김 전 실장은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며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국정과제"라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와 '변호인', 연극 '개구리' 등 특정 작품을 언급하면서 "용서가 안 된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같은 해 12월, "반정부·반국가 성향의 단체가 좌파의 온상이 돼서 종북세력을 지원하고 있는데 정부가 지원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그에 대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본격 지시에 나섰다.

각 수석비서관들은 이듬해 초 TF(태스크포스)를 꾸려 좌파 단체 지원 현황을 정리했고 3000여곳을 '문제 단체'로 지정, 8000여명을 좌편향 인사로 분류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이 문서는 곧 블랙리스트가 됐다. 수석비서관들은 박 대통령과 김 전 실장에게 블랙리스트 작성·관리 현황을 보고했다.


김 전 실장은 수석비서관들을 모아 놓고 블랙리스트 작성이 '박 대통령의 뜻'이란 사실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2014년 1월 "대통령께서 국회의원 시절부터 국가 개조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계셨다. 좌파의 뿌리가 깊으니 전투 모드를 갖추고 불퇴전의 각오로 좌파세력과 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대통령 혼자 뛰고 계시는데 내각은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지시가 잘 먹히지 않는다"며 "좌파 척결의 진도가 잘 안 나간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다이빙벨 상영' BIFF 예산 깎는 등 실제 불이익…문체부 공무원 사직 강요하기도

2014년 6월부터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조윤선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에 따라 실제로 특정 인사들이 불이익을 받도록 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문건을 교육문화수석실을 통해 문체부로 내려보냈고 조치 사항을 수시로 보고 받은 뒤 관련 내용을 김 전 실장에게 전달했다.

2014년 10월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겨냥해 예산 삭감을 지시한 것이 한 예다. 이 영화는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 대응을 비판한 내용을 담고 있다. 조 전 장관은 당시 영화 상영을 방해하기 위해 수석비서관들을 시켜 전좌석 관람권을 매입하도록 하고 내용을 깎아내리는 관람평을 게시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특검팀은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에게 국회에서 위증한 혐의(국회증언·감정법 위반)도 적용했다.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이들이 "블랙리스트 작성 경위를 모른다"고 한 발언을 허위 증언으로 본 것이다. 김 전 실장에 대해서는 블랙리스트에 부정적이었던 문체부 1급 공무원 3명에게 사직을 강요한 책임도 묻기로 했다.

김상률 전 수석에게는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57)을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강요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박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라고 지목한 노 전 국장에 대해서는 청와대에서 감찰을 벌이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검팀은 블랙리스트와 반대되는 '화이트리스트', '관제데모' 의혹 수사는 좀 더 진행할 계획이다.

◆朴대통령 대면조사서 의혹 집중 확인…최순실 일부 연루된 사실 밝혀내

블랙리스트 몸통으로 지목된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이 재판을 받게 되면서 이 사건 수사는 박 대통령만을 남겨둔 상황이다. 특검팀은 오는 10일쯤 진행될 박 대통령 대면조사에서 관련 의혹을 집중 확인할 방침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과의 인터뷰에서 "블랙리스트는 모르는 일이다. 뇌물죄도 아닌데 구속까지 한 것은 너무 과하다"며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바 있다.

한편 특검팀은 '비선 실세' 최순실씨(61·구속기소)도 블랙리스트 의혹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사실을 확인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최씨가 일부 혐의에 공범으로 분류됐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관련자들 공소사실에 "최씨는 평소 진보성향 인물을 기피했고, 현 정권의 코드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공직에 추천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최씨는 CJ그룹이 제작한 영화와 드라마를 문제 삼았고 박 대통령 역시 CJ 관계자에게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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