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재산 언제 상속하나?" 부자 3천명에게 물었더니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2017.02.05 08:00
글자크기

[행동재무학]<169>부자가 3대 이상을 가려면

편집자주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 "자녀에게 미리 재산을 증여하지 않겠다."

은퇴한 부모들에게 노후 생활원칙을 물어보면 놀랍게도 많은 이들이 한 목소리로 “돈이 있어야 자식에게 대접 받는다”고 답한다. 우리사회에서 부모 대접 제대로 받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려면 부모에게 재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굳게 박혀 있다.

그래서 노부모들 사이에선 “돈은 무덤에 갈 때까지 갖고 있어라”, “자녀에게 재산을 미리 주지 마라”와 같은 말들이 불문율처럼 오간다.



때때로 재테크 전문가들이 상속세 절감 목적에서 “미리 상속을 준비해야 한다”고 권고하지만, “상속세야 내가 죽은 다음에 자식들이 낼 거”라며 노부모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상속을 사망 직전까지 늦추는 경향이 높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우리사회에만 국한되지 않는 모양이다. 최근 캐나다왕립은행(RBC)의 자산운용 및 자문회사인 RBC 웰스매니지먼트가 미국·영국·캐나다 부자 약 3천명을 대상으로 재산 상속 계획을 조사했는데, 과반수가 재산 상속을 사망이나 병이 들 때까지 미루는 것으로 나타났다(엄밀히 말하면, 부모 사망 전에 재산을 자녀에게 주는 행위는 증여(사망 후는 상속)이나 여기선 증여와 상속을 따로 구분하지 않겠다).



RBC 웰스매니지먼트가 3개국에서 평균 순자산 450만 달러(약 50억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 3105명을 대상으로 자녀에게 언제 재산을 상속할 것인지 물었더니, 57%가 죽기 전엔 재산을 미리 주지 않겠다고 답하고 2%는 병에 걸리면 그제서야 재산을 주겠다고 답했다. 병이 들거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은 뒤에도 여전히 자녀에게 재산을 미리 주는 걸 꺼린다고 답한 부자 부모들도 있었다.

이에 반해 죽기 전에 미리 수년에 걸쳐 재산을 나눠 주겠다고 답한 부자 부모는 고작 29%에 불과했다.

이처럼 사망이나 병이 들어서야 뒤늦게 재산을 상속하려는 이유는 54%가 '넉넉한 노후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와 '자녀에게 미리 나눠줄 만큼 재산이 많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그리고 29%는 '자녀가 부모 재산을 당장 물려 받아야 할 필요가 없어서'와 '자녀에게 미리 재산을 주는 게 찜찜해서'라고 그 이유를 들었다.


# "자녀와 재산 상속 문제를 미리 얘기하지 않겠다."

자녀에게 재산을 미리 주느냐 안 주느냐의 여부를 떠나서 자녀에게 부모의 재산상황조차 알려주지 않는 노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자녀는 노부모한테 재산상태를 알려달라고 먼저 입 밖에 꺼내는 게 어렵다. 만약 그랬다간 우리사회에서 불효자라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자녀와 재산 상속 문제를 미리 얘기하지 않으려는 건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RBC 웰스매니지먼트의 설문조사를 보면, 미국·영국·캐나다 부자 부모들도 자녀와 재산 상속 문제를 미리 의논하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자 부모의 60%는 자녀와 재산 상속에 관해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는 게 거북하다고 답했다. 47%는 대화를 나누더라도 구체적인 내용은 뺀 채 일반적인 내용만 언급하겠다고 답했고, 13%는 자녀와 상속에 관해 일절 대화를 하지 않겠노라고 밝혔다.

실제로 부모로부터 재산을 상속받은 이들 중 사전에 부모와 상속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경우는 겨우 35%에 불과했고 55%는 사전에 아무런 대화 없이 상속을 받았다고 답했다.

그리고 사전에 상속 문제를 부모와 얘기했다 하더라도 대다수(73%)는 그저 상속 재산이 얼마인지를 듣는데 그쳤고 상속 재산의 처분이나 증식에 대해 구체적인 대화를 나눈 이들은 33% 밖에 안 됐다.

RBC 웰스매니지먼트는 자녀들이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상속을 받게 되면 상속 재산의 처분과 관리, 증식 결정에 커다란 어려움에 겪을 뿐 아니라 가족 내 다른 구성원과의 불화도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 "구체적인 상속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노부모가 재산을 미리 주지 않고 사전에 자녀에게 상속 문제를 언급하지 않아도 구체적인 상속 계획을 담은 유언장을 작성했다면 자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구체적인 상속 계획을 세운 노부모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게 RBC 설문조사에서 나타났다.

3개국 부자 3천명 가운데 구체적인 상속 계획을 세웠다고 답한 부모들은 고작 26%에 불과했고 32%는 아무런 상속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절반이 조금 넘는 54%는 유언장은 작성했다고 답해 그나마 다행이지만, 유언장은 상속 계획에 있어 첫단계에 불과하다. 게다가 유언장에는 상속 재산을 어떻게 투자하고 증식할지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자녀들에게 제한적인 도움 밖에 주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종합해보면, 상속자들의 과반수는 부모가 사망할 때 가서야 재산을 상속받고, 상속 전 부모와 아무런 대화도 갖지 못한 채 전혀 준비 없이 갑자기 재산을 물려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자 부모들은 3분의2가 재산 상속에 대해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 사망이나 병이 들어서야 갑자기 상속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재산 상속 문제를 자녀와 얘기하기를 꺼리는 부자 부모들은 대다수가 그 이유를 자녀가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이들의 3분의2가 구체적인 상속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아서 자녀와 얘기할 준비가 안 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내 자식들이 상속 재산을 잘 지킬지 자신이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들은 자녀에게 물려준 재산이 대대로 잘 보존되고 증식될지 많이 염려한다. 부모가 재산은 물려줄 수는 있을지언정 부(富)를 모으는 능력을 물려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RBC 웰스매니지먼트의 조사에서도 유언장을 작성한 부자 부모 가운데 자녀가 상속 재산을 잘 보존하고 증식시킬 것이라고 자신하는 이들은 절반에도 못 미쳤다(47%).

이에 대해 RBC 웰스매니지먼트는 부모가 구체적인 상속 계획을 세우고 사전에 자녀와 충분한 대화를 나눌수록 부모의 자신감은 올라간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무런 상속 계획을 안 가지고 있는 경우에 자녀의 능력을 자신하는 부모는 33%에 불과했지만, 구체적인 상속 계획을 세운 부자 부모들은 이보다 훨씬 높은 58%가 자신하고 있었다.

일부 부모들은 어린 자녀에게 부모의 재산상황을 알려주고 상속 계획을 얘기하면, 자녀가 게을러지고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하는 걸 포기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나 상속 얘기를 늦추면 늦출수록 자녀가 상속 재산을 보존하고 증식시킬 기술을 쌓는 기회가 줄어들게 될 수 있다는 게 RBC 웰스매니지먼트의 주장이다.

옛말에 '부자가 3대 가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RBC 웰스매니지먼트는 그 이유를 자녀가 상속 재산을 보존하고 키우는 지식을 부모가 너무 조금, 너무 늦게(too little, too late)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부모가 미리미리 구체적인 상속 계획을 세우고 자녀와 사전에 적극적으로 대화한다면, 부자가 3대 이상을 갈 수 있다고 자신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