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텐츠 "무대 위에서 불꽃이 튀었다…서울시향과 호흡 만족"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2017.01.2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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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21일, 서울시향 수석객원지휘자 슈텐츠 취임공연…"데죄 란키, 정교한 연주 보여줘"

21일 롯데콘서트홀 서울시향 공연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헝가리 피아니스트 데죄 란키(왼쪽)와 수석객원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사진제공=서울시립교향악단21일 롯데콘서트홀 서울시향 공연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헝가리 피아니스트 데죄 란키(왼쪽)와 수석객원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사진제공=서울시립교향악단


백발의 두 신사가 무대에 올랐다. 지휘봉을 잡은 이는 연주 틈틈이 피아노 앞에 앉은 이를 응시했다. 한 음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의 연주에 집중했다. 서울시향의 수석객원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와 헝가리 피아니스트 데죄 란키다. 란키의 손에서 탄생한 음들은 슈텐츠의 손끝을 타고 때론 클라리넷과, 때론 바이올린 선율과 조응했다. 슈텐츠, 란키, 서울시향의 호흡으로 완성된 리스트의 피아노협주곡 1번은 도나우강이 흐르는 부다페스트로 관객을 데려갔다.

2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의 '마르쿠스 슈텐츠 사이클: 낭만주의 시대의 혁명가들' 공연은 슈텐츠의 수석객원지휘자 취임 공연이었다. 리허설 때 지휘봉이 세 동강 날 정도로 연습에 몰두했던 그다. 열정적인 연습 때문이었을까. 공연이 막 끝난 뒤 슈텐츠의 얼굴엔 만족감이 흘렀다. 그는 "무대 위에서 스파크(spark·불꽃)가 튀어나오는 것을 또다시 경험했다"며 "매우 신나고 만족스러운 연주였다. (오케스트라가)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2일 연속 취임공연을 선사한 슈텐츠는 "신나고 만족스러운 연주였다"고 자평했다./ 사진제공=서울시립교향악단2일 연속 취임공연을 선사한 슈텐츠는 "신나고 만족스러운 연주였다"고 자평했다./ 사진제공=서울시립교향악단
그는 "음악은 순간을 창조해내는 것"이라고 했다. 20일 첫 공연과 이날 열린 두 번째 공연의 레퍼토리는 똑같았지만, 연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단 뜻이었다. "금요일 밤과 비교해 50여 곳 정도가 달라졌어요. 타이밍, 밸런스, 주선율에서 조금씩 조금씩 차이가 있었죠. 소리를 만들어나가는 것부터 관객과 호흡하는 부분까지 차이를 뒀습니다."

란키와는 첫 호흡 역시 만족스러웠다. 슈텐츠는 "그는 매우 정교한 연주를 보여줬다"며 "깊은 소리가 나오는 믿을 수 없는 연주"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30년 만에 내한, 서울시향과 처음 합을 맞춘 란키는 살짝 미소를 보였다. 헝가리의 3대 피아니스트로 꼽히며 리스트음악원에서 공부하기도 한 그에게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 고향을 연주하는 작품이다.



헝가리 피아니스트 데죄 란키는 리스트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30년 만에 내한한 그에게선 노련함이 묻어났다. /사진제공=서울시립교향악단헝가리 피아니스트 데죄 란키는 리스트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30년 만에 내한한 그에게선 노련함이 묻어났다. /사진제공=서울시립교향악단
한때 '클래식 아이돌'이었던 란키는 세월의 무게가 켜켜이 쌓여 노련함을 더했다. 그는 힘을 빼면서 강조하는 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고음 부분에서 더욱 섬세해지는 그의 연주는 리스트 특유의 청아하고 맑은 분위기를 살려냈다. 앙코르로 보여준 리스트의 '성녀 도로시' 연주 역시 우아했다. 다만, 절정 부분에서 오케스트라 연주에 피아노 소리가 묻혀 버리는 부분은 아쉬웠다.

이날 슈텐츠와 서울시향은 스트라빈스키의 초기작 '장송적 노래'를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유실됐다가 2015년 한 세기 만에 다시 발견된 작품이다. 음울한 트레몰로로 시작된 곡은 이내 금관과 현악이 진입하며 확장됐다. 중간중간 '왕벌의 비행'을 연상시키다가 장중하게 마무리된다. 짧지만 다채로운 색깔이 묻어났다.

메인프로그램은 슈만 교향곡 2번으로 그가 우울한 시기에 작곡된 곡이지만 역설적으로 희망적인 분위기를 전달했다. 슈텐츠는 힘있는 지휘로 시향을 이끌었다. /사진제공=서울시립교향악단메인프로그램은 슈만 교향곡 2번으로 그가 우울한 시기에 작곡된 곡이지만 역설적으로 희망적인 분위기를 전달했다. 슈텐츠는 힘있는 지휘로 시향을 이끌었다. /사진제공=서울시립교향악단
메인 프로그램은 슈만의 교향곡 2번. 슈만의 교향곡 가운데 유일하게 그가 우울증을 겪으며 혼란스러워하던 시기에 쓰인 곡이다. 하지만 네 악장 가운데 세 악장이 'C장조'를 취하고 있을 정도로 곡 전반의 분위기는 어둡지 않았다. 금관의 소리 위에 미끄러지듯 섞이는 바이올린의 선율이 어우러진 1악장은 행진곡처럼 힘찬 분위기를 선사했다.


스케르초 악장(2악장)에선 현악기들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질주하듯 연주하는 부분이 살아났다. 론도풍의 3악장에서야 잠시 호흡을 다듬듯 분위기가 전환됐다. 다만 슈만은 3악장에서도 침울함보다는 아련함에 가까운 감정을 담았다.

마지막 4악장은 고통을 이겨내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희망이 담겨있는 듯했다. 금관은 1악장과 수미상관 하듯 맞물렸다. 음 하나하나는 명징하고 힘찼다. 마무리를 장식한 팀파니의 강한 연타는 환희로 나아가려는 듯한 슈만의 의지가 엿보였다.

이날 공연에는 클래식 저변 확대를 위해 소방관 및 가족, 특수학교 교사, 서울시 어린이병원 직원 등 시간적 제약으로 문화를 즐기기 어려운 150명이 초청됐다. 슈텐츠의 무대가 끝나자 이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수석객원지휘자로 성공적인 데뷔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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