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천 풍경/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그 마을을 마지막으로 찾아간 것은 2011년 초봄이었다. 4대강 사업으로 영주댐 공사가 한창일 무렵이었다. 댐으로 망가지기 전의 내성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었다. 내성천을 무엇보다 내성천답게 만드는 건 금빛 모래였다. 강가에 앉아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래알들이 사르르 사르르 흘러내려가는 게 보였다. 물과 함께 금빛 모래가 흐르는 강. 하늘이 내린 축복이었다.
금강마을은 물속처럼 고요했다. 낮은 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너른 들판, 전체적으로 안온하면서도 만물을 품에 싸안는 느낌의 지형이었다. 조선 선조 때 장여화(張汝華)라는 사람이 처음 터를 잡았다니 언뜻 계산해 봐도 400년도 더 된 마을이었다. 곳곳에 빈집이 눈에 띄었다. 마을길을 올라가다 고색창연한 집을 한 채 만났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는데 중문 안쪽 방에서 TV소리 같은 게 들렸다. 빈집이 아니었구나. 대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주인을 불러봤다. 한참 뒤에 방문이 열리고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한분이 나왔다. 인사를 하니 경계의 기색도 없이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예, 이리와 앉아요.”
“이 큰집을 혼자 지키시려면 적적하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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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수 있나요. 죽을 때까지 지키다 가는 거지.”
“수몰된다고 이사 가라고 안 해요?”
“한참 시끄럽더니 요샌 조용하네. 금방 나가라고야 하겠어요? 물이 차려면 한참 걸릴 텐데….”
“그래도 어디로 갈지 준비는 하셔야 할 텐데….”
“가기는 어디로 가요. 사는 만큼 살다가 갈 데 없으면 저승길로 가야지….”
금강마을에 있었던 ‘장씨 고택’. 이 집에서 혼자 사는 노인을 만났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노인의 집에서 나와 낮은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마을 너머가 바로 댐 공사현장이었다. 아!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굴삭기가 연신 강바닥을 파고 덤프트럭이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다. 잘려진 산과 파헤쳐진 강이 무참하게 널브러진 현장이 거기 있었다.
언덕 위에는 긴 시간을 머금은 과일나무들이 꽃눈을 틔우고 있었다. 주인은 가지치기를 포기한 모양이었다. 밭가의 굵은 산수유도 노란 꽃을 지천으로 내뱉고 있었다. 오후 햇살이 자리를 편 무덤 앞에서 할미꽃을 만났다. 조금 전에 만났던 할머니를 꼭 닮았다. 무덤 앞에는 비석 대신 ‘이장공고’ 팻말이 붙어 있었다.
허청거리는 걸음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아봤다. 의관댁, 만연헌, 장석우 가옥, 까치구멍집…. 마을 전체가 유적이고 문화재였다. 돌아오는 길, 다리를 건너 차를 세우고 다시 마을을 돌아보았다. 강은 여전히 유유히 흐르고 마을은 봄 햇살 속에 낮게 잠겨 있었다. 햇빛을 머금은 금모래들이 반짝, 손을 흔들었다.
벌써 5년도 더 지났으니 댐은 완성되고 담수도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곳을 잊지 못한다. 그 자리에 뼈를 묻겠다는 노인은 어디로 갔을까. 물속에 잠긴 마을은 어떻게 변했을까. 갈 수 없어서 그리운 곳의 풍경은 뼛속에 각인되어 두고두고 떠오르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