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도 장인도 늙는데, 명맥이을 청년이 없다"

머니투데이 신희은 기자 2017.01.13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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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정태도 서울한옥지원센터 한옥건축명장(도편수)

정태도 서울한옥지원센터 한옥건축명장(도편수·45). @사진=김기범 기자.정태도 서울한옥지원센터 한옥건축명장(도편수·45). @사진=김기범 기자.


“궁궐도 복원하고 3.3㎡에 5000만원 넘게 들인 대기업 회장님댁은 물론 서민형 한옥도 지어봤죠. 잘 지은 한옥 알아보는 법이요? 처마 끝에 달린 ‘추녀’만 봐도 압니다.”

기품 있고 정갈한 한옥이 골목마다 자태를 뽐내는 서울 가회동과 북촌 일대에서도 내로라하는 한옥들을 손수 지은 ‘한옥건축명장(도편수)’의 말이다.



정태도 서울한옥지원센터 한옥건축명장(사진·45)은 지난 11일 머니투데이와 만나 최근 한옥 신축이 줄을 잇고 있지만 정성 들여 지은 집은 추녀와 같은 디테일만 봐도 단 번에 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력 있는 목수는 추녀 하나도 허투루 다듬지 않는다. 이런 목수가 싸구려 목재로 대충 집을 지었을 리 없다는 얘기다. 정성껏 제대로 지은 한옥이라야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를 발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싸고 빠르게’ 한옥을 지어 주겠다는 이들도 있지만 99㎡ 기준 대지매입 비용을 제외하고 건축비만 3.3㎡당 최소 1500만원, 기간은 8개월 이상 들여야 제대로 된 한옥을 지을 수 있다고 했다. 비싼 땅값을 고려하면 서울 도심에서 한옥을 신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작고 오래된 한옥을 구입해 고쳐 사는 이들도 많이 늘었다. 한옥밀집지역의 경우 서울시에서 최대 6000만원의 보조금에 6000만원을 추가로 융자해주기 때문에 비용부담도 덜 수 있다.

정 명장은 “오래되더라도 좋은 한옥집을 찾는다면 기둥, 보, 서까래 등 부재가 얼마나 완성도 있고 튼튼한 구조로 짜졌느냐를 살펴야 한다”며 “기와도 전면 교체하려면 3000만원 이상 들기 때문에 너무 오래되지는 않았나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명장은 목재일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한옥 건축에서 목수팀을 거느리는 ‘대목장’이다. 1988년 고등학교 때부터 목공소를 하셨던 작은아버지 아래에서 목수일을 처음 시작해 신응수 대목장을 스승으로 모시고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운현궁 등을 복원·보수하며 일을 배웠다.

‘사람 사는 살림집’을 짓고 싶어 독립한 후에는 경주 한옥호텔 ‘라궁’을 시작으로 가회동 ‘소환재’,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들어가기 전에 살았던 ‘취운정’, 가회동성당 등이 모두 정 명장의 손을 거쳤다. 대기업 회장들의 한옥을 짓고 보수하는 일도 여러 번 맡았다.

정태도 서울한옥지원센터 한옥건축명장(도편수·45). @사진=김기범 기자.정태도 서울한옥지원센터 한옥건축명장(도편수·45). @사진=김기범 기자.
지난해 6월부터는 대목장 가운데 처음으로 서울시 공무원으로 특별채용돼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서울한옥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한옥 신축과 개·보수를 상담해주고 관심 있는 시민들을 상대로 한옥건축교실을 운영한다.

정 명장은 “현장 기술자로 살다가 공무원이 될 줄은 생각지 못했는데 막상 해보니 공적 영역에서 많은 걸 배우고 있다”며 “좋은 한옥을 잘 관리하고 젊은 기술자를 육성하고 현대에 맞는 집단한옥 등 실험적인 시도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고령층이 소유한 낡은 한옥을 공공이 신축 혹은 수선해 땅은 주인이 소유하되 건물은 시에서 관리하거나 낙후된 한옥밀집지역을 집단한옥 형태로 개발하는 방안 등 아이디어가 넘쳤다. 무엇보다 60~70대가 대부분인 한옥 건축 관련 기술자들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인재를 육성하는 게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 명장은 “한옥을 짓는 데 12가지 공정이 필요한데 모든 영역에 젊은 기술자가 부족하다”며 “10년 후면 이 기술자들이 귀해질 텐데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나 과정이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 같은 나라는 기술자, 장인을 오랜 기간 교육하고 실습시켜 배출하고 대우한다”며 “우리도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젊은이들을 위한 교육 시스템을 시급하게 조성해서 장인을 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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