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경전도 아니고 스승의 옷과 밥그릇이 법맥을 전하는 수단이 된 것은 왜일까. 의외로 답은 싱겁다. 스승이 제자에게 전해줄 것도, 제자가 스승에게 전해받을 것도 없다는 의미다. 법맥이든 진리든 뭐든지 간에 그것은 스스로 깨닫고 얻어야 하는 것이지 누가 전해줘서 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붓다는 또 무수히 많은 사람을 교화하고 구제했지만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금강경’에서 붓다는 제자 수보리에게 분명히 말한다. “수보리여 절대로 착각해서는 안 되네. 그렇게 생각하지 말게. 내가 일체중생을 구하려 했다고 생각해선 절대 안 되네. 왜냐하면 여래가 제도한 중생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지.”
다른 누군가가 해주는 게 아니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긍정하는 것, 그것은 2017년 새해에 우리가 화두로 삼을 만하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법적 시시비비는 특별검사팀과 헌법재판소가 가려주겠지만 근본 문제로 들어가면 대통령의 잘못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잘못이다. 연설문 작성이나 고위직 인사 같은 핵심 책무뿐만 아니라 하다못해 청와대 강아지 이름 짓는 것까지 스스로 하지 못하고 최순실에게 의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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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도 잘못을 저지른다. 그의 딸 정유라에 대해 말이다. 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대통령과 기업들까지 동원해 고가의 말을 사주고, 대학에도 입학시켜주고, 해외에 나가 살 수 있도록까지 했지만 정작 딸이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갖도록 키우지는 못했다. 그 결과 딸까지 파멸의 길로 몰아넣었다.
그럼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만 잘못했는가. 촛불을 든 1000만명을 포함해서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리도 잘못을 저지른 건 마찬가지다. 주권자로서 스스로가 주인이 되지 못하고 지역주의와 진영논리에 의해, 정치가들의 선동에 따라, 언론이 만든 허상을 좇아서 달려간 결과가 지금의 ‘최순실 게이트’다.
역설적이지만 탄핵의 무대 앞에 선 대통령 박근혜는 바로 나의 자화상이고 당신의 자화상이다. 촛불을 든다고 해서 그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촛불이 해답도 아니다.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붓다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니고 촛불도 아니다. 바로 나 당신 그리고 우리 자신밖에 없다.
새해에는 내가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나만의 향기와 색깔로 살아보자. 일체의 권위에 맞서 당당하게 주인으로 살아보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