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100% 안전한 여행지는 없다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17.01.14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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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평화로운 나라, 쿠바의 포근함

편집자주 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쿠바 아바나의 밤풍경. 비교적 어둡지만 위험을 느낄 일은 없었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쿠바 아바나의 밤풍경. 비교적 어둡지만 위험을 느낄 일은 없었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이제 터키 여행을 가는 건 어려울 것 같지요? 진작에 다녀왔어야 하는데 정말 아쉬워요.”

“예? 왜요? 왜 어렵다고 생각하는데요?”

“시리아 분쟁이나 그런 문제로 엄청 불안하잖아요. IS 테러도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르고….”



“예, 좀 불안하긴 하지요. 그렇다고 여행을 못 갈 정도는 아닌데.”

터키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손꼽는 여행지다. 하지만 근래 들어 발길이 부쩍 줄어들었다고 한다. 위험하다는 이유에서다. 구체적으로 왜 위험한지, 얼마나 위험한지 설명할 수는 없어도 직접 가는 건 피하려고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애써 위험한 곳으로 여행을 가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어지간한 곳은 그냥 가보라고 권한다. 조금 불안해도 막상 가보면 별로 위험하지 않은 곳이 더 많기 때문이다. 터키 역시 전쟁터처럼 위험한 곳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100% 안전한 곳이 있을까. 위험도를 따진다면 프랑스 파리나 벨기에의 브뤼셀 등도 언제 또 테러가 일어날지 모르니 기피 하는 게 옳다. ‘9.11’이라는 미증유의 테러가 일어났던 뉴욕은 어떻고? 역지사지로 보면 외국인들이 한국에 올 일도 없다. 남북이 여전히 대치상태고 미사일이니 핵이니 하는 뉴스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외교부에서는 질색할 이야기지만, 일부러 위험한 곳을 찾아가는 여행자들도 있다. 나도 그런 부류에서 크게 멀지 않은데, 여행지를 잡을 때마다 내가 가는 곳이 조금 위험한 지역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터키-시리아 국경 근처를 찾아가기도 했고, 파리에 테러가 일어났을 때는 날짜가 어긋난 것을 아쉬워했다. 쿠르드 반군이 출몰하는 지역을 안방 찾듯 한 적도 있다. 아직 위험한 일을 겪지 못해서 겁이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겐 그런 위험조차 여행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트리니다드/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트리니다드/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전혀 위험하지 않은 곳인데도 여행을 망설이는 경우도 많다. 선입관 때문이다. 쿠바 역시 그런 곳 중 하나다. 쿠바로 갈 때 내게 걱정 어린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거기 위험하지 않아요?”

“아뇨. 치안이나 안전성으로 보면 여행자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쿠바예요.”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사회주의 체제라고 해서 특별히 위험한 것은 아니잖아요? 어떤 이데올로기도 위험을 전제로 태어나지는 않으니까요. 문제는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지요.”

“그래도 난 불안해서 못 갈 것 같아요.”

“그건 뭐 선택의 문제니까. 하지만 쿠바 사람들은 가난 속에서도 자기들끼리 노래하고 춤추며 평화롭게 살아요.”

역시 쿠바는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내가 예측한 것보다 더욱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트리니다드에서 공연이 펼쳐지는 광장에 갔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골목이 어찌 그리 비슷비슷한지. 게다가 가로등도 없었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서 이곳저곳을 헤맸지만 불안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컴컴함 속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물어도 하나같이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아바나에서 늦은 밤까지 살사댄스에 푹 빠져 있다가 돌아가는 길도 그랬다. 언뜻 보기에 ‘불량기’ 가득한 청년들이 포진하고 있는 말레콘을 걸어갔지만 아무 위협도 느끼지 못했다. 인간에 대한 인간으로부터의 위험은 문명이 발달할수록 그 강도를 더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곳은 없다. 쿠바에서도 사고나 범죄는 일어난다. 자본주의가 조금씩 침투하면서 슬그머니 잔돈을 떼먹거나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로마나 파리, 이스탄불 등 유명도시마다 포진하고 있는 소매치기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본 쿠바는 여행자에게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였다. 여행자의 천국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만 1970년대쯤에서 멈춰버린 시간과 그 시간이 박제처럼 걸린 풍경이, 급작스럽게 쏟아져 들어오는 외지인의 발길에 의해 무너질 것 같아 조금 불안한 천국이었다. 그곳은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별처럼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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