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 출신 외국인, CJ대한통운 베테랑 택배기사 된 사연

머니투데이 안산(경기)=박상빈 기자 2017.01.0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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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지나툴린 드미트리 CJ대한통운 경기안산이동대리점 택배기사

CJ대한통운 외국인 택배기사 지나툴린 드미트리씨의 모습./사진=박상빈 기자CJ대한통운 외국인 택배기사 지나툴린 드미트리씨의 모습./사진=박상빈 기자


경기 안산시 상록구에는 '지역 명물'로 통하는 택배기사가 있다. 국내 유일(혹은 극소수)의 외국인 택배기사인 지나툴린 드미트리씨(32)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12월23일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경기 안산시 대리점에서 만난 그는 택배기사의 삶을 5년째 이어가기 위한 준비에 바빴다. 갈색 머리 위로 쓴 겨울 모자와 CJ대한통운 소속을 알리는 겨울점퍼가 잘 어울렸다. 러시아 출신인 드미트리씨는 한국의 겨울 추위에 대해 "영하 40도씩 떨어지는 러시아보다는 춥지 않다"며 미소를 지었다.



발레를 전공한 무용수였던 드미트리씨는 2006년 한국에 오기 전까지 한국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다고 한다. 한국의 놀이공원에 무용수로 일할 수 있다는 권유를 받고 한국행을 결정한 21살 그의 인생은 이후 10년간 전혀 뜻밖의 길로 달려왔다.

놀이공원에서 흔히 구경할 수 있는 퍼레이드의 무용수로서 5년간 일한 그의 인생은 현재의 아내를 만나며 더 급변했다. 놀이공원 특성상 외국인 무용수가 많은 이유로 사내연애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드미트리씨는 같은 직장에 다니던 한국인 아내와 비밀연애로 사랑을 키워갔다. 그러다가 2010년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으며 그는 계약이 끝나 2011년 퇴사했다.



무용수로서의 일이 끝났지만 드미트리씨는 한국에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생겼을 뿐 아니라 한국 사람과 사회가 좋아 러시아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아내와 가깝게 지내던 박찬규 CJ대한통운 경기안산이동대리점 점장 부부가 권유한 택배기사를 하기로 도전했다.

전혀 생소하고 고된 일이라고 들었지만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 좋아하는 운전도 할 수 있는 일이어서 매력적이었다. 물론 외국인이 하기에는 도전 자체가 쉽지만은 않았다.

놀이공원에서 익힌 한국어 실력이 가족, 친구들과 의사소통하기에는 무리가 없었지만 택배기사를 하기 위해 필요한 화물운송자격증을 따는 데 문제가 됐다. 문제를 이해하기도 어려운 필기시험에 번번이 떨어져 결국 실기 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따냈다.


전화 업무가 많은 택배업 특성상 부정확한 발음이 오해를 만들기도 했다. 보이스피싱으로 오해한 고객이 신고해 파출소에 가기도 했고, 외국인이라는 것을 문제 삼아 이유없이 차별하는 고객도 만났다.

그러나 쉬는 날 남편을 도와 함께 택배 배송에 나섰던 아내의 응원을 받고 힘을 더욱 낼 수 있었다. CJ대한통운의 체계화 된 배송 시스템도 일하기를 수월하게 했다.

2013년부터 한 지역을 맡아 3년간 업무한 최근에는 드미트리씨는 일에 능숙해진 것을 넘어 팬들도 만들어 냈다. 여러 고객들에게 '힘내라', '고생많다'는 응원의 말을 듣는 것은 물론 크리스마스 선물, 손편지를 건네 받은 자랑거리 이야기도 생겼다.

한국 사회가 최근 뒤숭숭한 분위기에 있지만 드미트리씨는 사람들도 친절하고, 살기가 좋다며 한국으로의 귀화를 추진 중이다. 그는 새해 계획으로 "7살이 된 아들이 학교 가기 전 더 신나게 놀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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