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씨눈' 을 아세요?…취업자랑에도 배려 필요한 시대

뉴스1 제공 2016.12.17 07:10
글자크기

좁은 취업문턱에…합격자랑 글에 '주의' 태그달아
교수 "취업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는 상황"

(서울=뉴스1) 이원준 기자 =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제목:(ㄴㅆㄴㅈㅇ)○○은행vs□□기업 어디 갈까요
본문:상경대 남이고 두군데 동시에 붙었어요. 빨리 결정을 내려야 다른 취준생들에게도 추가합격 기회가 갈 것 같은데 어딜 택할지 정말 고민됩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출처: 모 대학커뮤니티 취업게시판)

주요 기업들의 하반기 공채일정도 막바지에 이른 12월, 취업준비생들 사이에 합격과 불합격의 명암이 갈리면서 취업게시판에 '넌씨눈' 주의보가 발효됐다.



'넌씨눈'(넌 씨X 눈치도 없냐)은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늘여놓는 사람'을 지칭하는 은어다. 원래 눈치없는 행동을 지적할 때 주로 쓰이는데 온라인 취업게시판에서는 '눈치없는 게시글이니 주의하라'는 경고 의미로도 활용된다.

예를 들어 2개 이상 기업에 중복 합격했는데 어디를 선택할지 문의하는 글이나 "회사에서 합격축하 꽃다발을 보내서 깜짝 놀랐네요"같이 합격 소식을 알리는 글, "최종합격했는데 연수 전에 유럽여행 다녀오는 거 가능할까요"처럼 합격 사실이 포함된 글 제목 앞에 'ㄴㅆㄴㅈㅇ'을 붙이는 식이다.



'넌씨눈'을 쓰는 이유는 게시글이 다른 취준생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어서다. 괜히 취준생의 예민한 심기를 건드려 의도치 않게 비난 세례를 받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자기자랑으로 비칠 수 있는 게시글에 '넌씨눈주의'란 태그를 달아 '내 자랑이 담겼으니 유의하라'고 주의를 주는 것이다.

수십번의 서류 탈락과 창업 실패를 딛고 세번째 인턴에서 정규직 신입사원이 된 취업준비생 이모씨(27)도 얼마 전 취업게시판에 '넌씨눈' 글을 올렸다. 이씨는 "익명의 힘에 기대 합격 소식을 자랑하고 싶었다"면서 "그래도 혹시 욕설이나 비방하는 댓글이 달릴까 무서워 '넌씨눈주의' 태그를 제목에 붙였다"고 말했다.

◇"취업소식은 가족과 친구에만"…오프라인에서도 넌씨눈


취업자랑에 배려가 필요한 건 비단 온라인상의 일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함께 취준생활을 했던 동료·친구들에게 상처 줄까 취업의 기쁨을 제대로 나누지 못한다는 합격생들의 토로는 쉽게 들을 수 있다.

두달 전 유명 타이어회사에 취업한 박모씨(26)도 그중 하다. 합격소식을 가족과 친한 친구들에게만 알린 채 베트남으로 해외여행을 떠난 그는 "합격소식을 먼저 전하자니 취업 못 한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면서 "여행사진을 보고 무슨일 있냐고 연락 오면 그제야 소식을 말하고 축하받았다"고 씁쓸해했다.

이러한 분위기 탓에 취업하더라도 온라인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절대 합격인증 글을 남기지 않겠다는 말도 나온다. 대기업 최종면접결과를 기다리는 곽모씨(28)는 "1년 동안 동고동락한 스터디원 친구들이 아직 한명도 취업하지 못했다"면서 "동네방네 소문내기보단 따로 약속을 잡아 조용하게 축하받고 싶다"고 말했다.

배려라곤 하지만 '넌씨눈' 태그가 달린 글을 보는 취준생들의 기분도 썩 좋진 않다. 취준생 김모씨(26)는 "최종면접에서 떨어지고 한동안 넌씨눈 글은 읽어보지 않았다"며 "더 우울해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다른 취준생 황모씨(28)는 "고생했단 사실을 아는 만큼 머리로는 축하해주고 싶은데 또 (날 떨어뜨린) 경쟁자였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짜증 나는 게 현실"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른 사람이 취업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는 상황"이라면서 "그만큼 취업이 어려운 과정이 됐다는 걸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