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워터게이트 사건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진행 과정은 판박이다. 폭로, 부인, 추가 폭로, 부분적 사과와 은폐 시도, 잇따른 폭로, 점점 올라가는 사과의 수위, 마침내 탄핵 초읽기 그리고 하야. 우리 쪽의 종착점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도청사건으로 알려졌지만 닉슨과 측근들의 권력농단이 깊은 원인이다. 닉슨정부가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의 역사적 발원점의 의미를 크게 훼손한 데서 비롯됐다.
미국의 프레지던트가 우리나라에 와선 ‘대통령’(大統領)으로 쓰였다. 사연은 이렇다. 중국 청나라에서 프레지던트의 음을 따라 ‘백리이천덕’(伯理爾天德)으로 표기했다. 조선도 이를 사용했으나 1883년 홍영식이 미국을 다녀와 고종에게 ‘대통령’이란 말을 소개하면서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10년 전인 1873년 일본의 미노사쿠 린쇼가 ‘프랑스 헌법’을 출간하면서 ‘백리이천덕‘을 대통령으로 번역한 데 영향을 받았을 것이란 해석이다(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 저). 대통령이란 말 자체가 수입된 것이다.
당연하다고 여기며 사용한 대통령이란 말의 뿌리. 우리 스스로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한 역사가 있을 줄 알았는데 좀 허망하다. 게다가 프레지던트의 좋은 뜻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큰 대’ ‘거느릴 통’ ‘거느릴 령’. 반복된 단어 ‘거느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부양해야 할 손아랫사람을 데리고 있다. 부하나 군대 따위를 통솔하여 이끌다’이다. 국민을 손아래나 부하로 보는 권위주의적 발상이다. 박근혜정부가 보여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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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논란이 있지만 개헌 논의도 조만간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나라의 지배구조를 혁신하는 일이다. 이때 대통령이란 직함도 국민들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말로 바꿔보면 어떨까.
실제 헌법에는 헌법 수호,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 등 대통령의 책무가 주로 언급될 뿐 ‘다스린다’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리더를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도 흔들린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중요한 토양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기업들도 창의적·수평적 문화를 도입하기 위해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임원과 간부들의 호칭 변경 아니던가. 주권자들을 받들어야 하는 자리인 대통령. 이젠 오래된 수직적 계급장을 떼어내고 시대에 맞는 수평적 새 직함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한다. 직함 같은 형식이 리더 스스로의 자기 정체성과 리더를 바라보는 국민들 시선을 더욱 민주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