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혼란 못지않게 요즘 농민들을 애태우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AI)의 단초가 발견된 건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였다.
지난 달 28일 충남 천안 풍세면 남관리 인근 봉강천을 찾은 건국대 연구팀은 주변에서 야생원앙 분변 시료를 채취했다. 연구팀은 보다 정확한 검사를 위해 이를 종란에 접종했고, 종란 속 병아리가 죽자 이를 이상히 여겨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정밀검사를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AI 바이러스가 발병할 때마다 정부는 재발방지를 내 놓았지만 그 약속은 늘 공약(空約)이 됐다.
정부가 과거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으로 내놓은 방역 대책들은 지나보면 탁상행정의 연장선상에 있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매번 수 천억원의 비용을 수반하는 대책이 이렇게 허술했다면 '정신줄 놓은 정부'라는 지청구도 지나친 건 아니다.
일명 '조류독감'으로 불리우는 AI 바이러스는 사람으로 치면 감기에 걸릴 뿐이지만 닭이나 오리 등 가금류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이제까지 확인된 바이러스 유형만 100여종에 달해 대처방법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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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올해 발생한 고병원성 H5N6형 AI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새로운 유형으로 그 감염이나 증상이 어떤 식으로 나타날 지도 속단할 수 없는 처지다.
AI 피해가 잇따르면서 정부가 농가 보상 등에 쏟아부은 돈은 어마어마하다. 2008년 전국 1500개 피해농가에 3070억원에 달하는 살처분 보상금과 생계 소득안정 지원금을 지급했는가 하면, 2014~2015년 상반기까지 AI 발생 782개 농가에 투입된 보상 및 지원금만 해도 2380억원에 달했다.
올 해 발생한 AI 바이러스는 확산속도가 그 어느 때 보다 빨라 당황스럽다. 지난 달 첫 발생한 AI는 이후 충남·북, 전남·북에서 동시다발로 터지더니 어느새 경기도까지 치달아 수도 서울을 위협하고 있는 지경이다. 한 달새 AI 감염으로 살처분 된 가금류만 벌써 100만 마리에 육박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금까지 이 유형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16명중 1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AI 바이러스가 더 이상 조류에만 해당 된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쯤되면 AI 피해농가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 대한 관련 위생정보 제공 및 보호조치도 시급해 보인다.
방역당국은 일단 확산 저지를 위해 일시 이동중지명령(StandStill)을 발동하는 등 총력대응 태세다. 철새들의 이동경로인 서해안 지역의 가금류 관련 축산인과 농장, 축산시설 및 차량 등을 대상으로 36시간(19일 0시~20일 낮 12시)에 걸쳐 차단방역을 실시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정부의 안일한 AI 대응은 또 다른 사태의 전조(前兆)일 수 있다. 더우기 지금은 '최순실 게이트'로 야기된 국정공백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답답하고 심란하기는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즘들어 "내가 이럴려고 공무원이 됐나"라며 고개 숙이는 공무원들의 모습을 봐도 그렇다. 그래도 국민들은 기대한다. 그대들이 대한민국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堡壘)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