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부터 대통령까지…평등하고 아름다운 장례식

머니투데이 백선기 이로운넷 쿨머니에디터 2016.11.1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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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머니,우리동네 히든챔피언] 착한 장례문화를 선도하는 사회적기업, 한마음F&C

편집자주 나랏님도 풀지 못한다는 숙제를 척척 해결해 나가는 이웃들이 있다. 돈벌기는 기본! 우리 동네에 일자리를 만들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환경을 지키는 착한 기업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히든 챔피언’ 즉 대중한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장을 이끄는 우량기업의 새로운 모델이 아닐까? 머니투데이는 서울형 사회적기업 이로운넷과 공동으로 '우리 동네 히든 챔피언'을 발굴해 그들의 활약을 소개한다.

지난 5월, 한 상조회사로 강남구 일원동의 한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지적장애를 지닌 40대 여성이 모친상을 당했는데 밀린 병원비 때문에 고인을 안치실에 모셔두고 며칠 째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회사 대표는 그 길로 달려갔다. 소박하지만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렀다. 무료였다. 돌아가신 모친에겐 밀린 병원비가 있었다. 이 돈은 딱한 사정을 들은 주민들이 주민센터와 함께 십시일반 모아 대신 갚았다.



문 윤 한마음 F&C 대표/사진제공=한마음 F&C문 윤 한마음 F&C 대표/사진제공=한마음 F&C


◇ "상조회사 근무하면서 폐해 깨달아"

빈민부터 대통령까지 평등하게 모시는 상조회사가 있다. 한마음에프앤씨(이하 F&C, Funeral and Culture)다. 예비 사회적기업이기도 한 이 회사는 전국 13개 지역에 본부를 두고 착한 장례 문화를 전파한다. 거품을 뺀 가격, 장례용품 생산자 이력 공개, 윤리적 소비로 새로운 장례 문화를 만들고 있다.



문윤 대표(35)는 창업 전 8년 동안 아버지와 함께 한 상조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업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알게 되었다. 일부 상조 회사들이 회원 수를 늘리는 데만 열을 올려 영업비와 인건비·사옥 건립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회비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

게다가 2010년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 후 폐업하는 상조회사가 줄을 잇고 있다. 상조회사의 난립을 막기 위해 정부가 회비의 50%를 은행에 예치하도록 자격을 강화했던 것이다. 지난 7월에는 과거 상조업계 10위였던 '국민상조'가 문을 닫았다. 업계 14위인 '동아상조', 강원도 최대 상조회사' AS상조'도 1년 사이에 폐업했다. 5년 전만 해도 300개에 달하던 상조 회사들은 200여 개로 줄었다.

굵직한 상조 회사들의 폐업은 이들을 주요고객사로 둔 공제조합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소비자들의 피해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5년 상조피해 접수건수는 1만1779건이다.


이 같은 위험성을 차단하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상조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길은 없을 까. 문 대표는 그 방법을 사회적기업으로 풀어냈다.

◇ 후불제, 이용료 30% 절감…장례서비스 혁신

한마음F&C는 관공서와 기업체와 장례서비스 제공 계약을 맺고 임직원 및 가족이 상을 당할 경우 회사를 대신해 상조일회용품과 근조화환을 제공한다. 장례지도사와 도우미 등 장례 전문인력도 파견한다.

주요 고객은 코레일과 국민연금관리공단, 성남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삼성화재애니카손사 등 60여개의 관공서와 굵직한 기업의 임직원들이다. 계약 조건에 따라 상가용품 배송서비스만 제공해주거나 또는 장지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장례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 달 평균 370건이 넘는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고 지난 2년간 누적 건수는 4600여 건에 이른다.

한마음F&C는 여타 상조회사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다달이 회비를 걷지 않고 장례를 치른 후 결제하는 후불제 방식이라는 점이다. 먼저 낸 회비가 없으므로 돈을 날릴 염려가 없다. 한마음에프앤씨에서 제공하는 패키지 상품을 이용할 경우 실제 이용하지 않은 서비스요금은 되돌려주는 페이백(Pay-back)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문 대표는 “동일서비스 기준으로 비교해볼 때 일반 상조회사보다 평균 30% 이상 가격이 저렴하다”며 “광고비를 없애고 음성적으로 성행해온 불법리베이트를 근절한 결과다”고 밝혔다. 또 전국 250개의 장례식장 및 봉안당과 제휴를 맺어 다양한 할인 혜택을 제공해준다.
한마음 F&C에는 5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장례지도사 94명이 고객맞춤형 장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사진제공=한마음 F&C한마음 F&C에는 5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장례지도사 94명이 고객맞춤형 장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사진제공=한마음 F&C
◇ 최고의 경쟁력은 ‘전문 인력’…업계 최초 ISO 인증

문대표가 장례서비스 관련 사업을 운영하며 가장 중시하는 것은 인력관리다. 장례지도학과 교수와 현직 장례지도사로 구성된 교수부를 운영하며 장례지도사와 상가도우미들을 상시 교육하고 있다. 현재 장례지도사는 94명, 장례도우미는 327명에 이른다.

고객센터는 365일 24시간 열려있다. 고객 응대 때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유가족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장례지도사와는 별도로 여성장례지도사가 파견돼 유가족들을 특별 관리한다.

품질보증제도를 도입해 클레임이 발생시 300% 배상제도와 인력, 협력사에게는 삼진아웃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 같은 체계화된 서비스로 업계 최초로 품질경영시스템 ISO 9001 인증을 받았다. 입증된 실력은 굵직한 행사를 맡는 데 밑거름이 됐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때, 문 대표는 베테랑 장례지도사와 함께 국가장과 국회 대표분향소에서 의전을 담당했다. 세월호 참사 때에는 개인적으로 자원봉사하러 갔다가 업체 선정 공고를 보고는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 운영을 맡았다.

고객으로부터 얻은 신뢰는 매출로 이어졌다. 창업해인 2014년 1억 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2015년에는 7억3000만 원, 올해에는 3분기까지 20억 원을 달성했다. 그 사이 직원도 5명에서 21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48%인 10명이 고령층과 경력단절여성,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이다. 문 대표는 “사회적기업으로 책무를 다하기 위해 최소 50%까지 취약계층 고용을 끌어 올리는 게 목표다”고 말했다.

◇장애인·독거노인·노숙인 등 취약계층에 무료 장례

한마음F&C는 기업의 장례서비스 이용금액의 1%를 사회적 목적을 위해 적립한다.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나눔과 상생이 활발해지는 구조다. 올해만도 취약계층과 독거노인들에게 무료장례식을 11차례 치러줬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1100만 원에 상당하는 서비스다.

서정현 장례지도사는 몇 주 전 한 기초생활수급자를 위한 무료장례서비스를 잊지 못한다. 상주인 동생은 하마터면 애도의 시간도 없이 화장터로 직행할 뻔 했던 형님을 고이 모시면서 거듭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 지도사는 “나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 도움을 줄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고 말했다.

한마음F&C와 무료 장례지원서비스 협약을 맺은 기관은 현재 장애인·노인 등 25개 복지기관을 운영하는 엔젤스헤이븐, 경기도 광주시, 대전시 유성구,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는 빅이슈코리아 등 4군데다.

장례서비스 제공 내용은 실시간으로 고객들에게 보고되고  모바일 부고장 서비스도 이용가능하다./사진제공=한마음 F&C장례서비스 제공 내용은 실시간으로 고객들에게 보고되고 모바일 부고장 서비스도 이용가능하다./사진제공=한마음 F&C
◇ 장례용품 생산자 이력 소개하면서 윤리적 소비 촉진

한마음F&C의 사회적 미션 중 하나는 윤리적 소비다. 고객이 장례와 상조물품을 이용할 때 생산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내는지 정보를 제공해 윤리적 소비를 촉진시키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쓰이는 일회용 컵과 국그릇은 경북의 사회적기업 '제일산업' 제품이다. 제일산업은 중증장애인 40명이 근로하는 작업장이다. 문 대표는 “정범수 제일산업 대표가 우리 뜻에 동참해 거의 원가 수준에 제품을 제공해주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수의는 전남의 예비 사회적기업인 사단법인 ‘화순사랑’이 생산한다. 화순사랑은 장애인과 다양한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며 삼베를 이용한 의류를 만드는 곳이다. 근조화환은 쌀화환을 이용하기도 한다.

문 대표는 “회사의 사무용품은 사회적기업 ‘행복나래’로부터 구매하고 있다”며 “이런 작은 행동들이 쌓여 사회적경제 생태계 구축에 보탬이 되길 희망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유가족들이 고인의 모습을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도록 한지와 생화로 꾸며진 꽃 침대/사진제공=한마음F&C유가족들이 고인의 모습을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도록 한지와 생화로 꾸며진 꽃 침대/사진제공=한마음F&C
◇ 청년의 눈으로 ‘아름다운 이별’ 연출

문 대표는 다음세대에 올바른 장례문화를 전달하려면 젊은이들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30대인 그는 어둡고 칙칙한 장례문화를 벗어나 고인을 아름답게 추모하는 형식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여러 가지 색상의 한지와 생화로 만든 꽃 장식 침대가 그 한 예다.

신촌세브란스에서 엄마를 떠나보낸 김영진 씨(가명) 삼남매는 “평소 꽃을 좋아하셨던 엄마가 꽃 침대에 누워 국화꽃 이불을 덮은 모습을 보니 마음에 들어 하실 것 같아 큰 위로가 됐다”는 손편지를 남겼다.

문 대표는 1인 가구 증가에 발맞춰 단촐한 가족장, 절차를 줄인 약식장 등 예의와 품격은 유지하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장례를 치를 수 있는 맞춤형 장례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그의 오랜 꿈은 착한 장례문화를 총집결한 장례식장을 전국 각지에 마련하는 일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문화 때문에 휠체어 입장이 어려워 조문을 못 가는 장애인들이 많다는 거 아세요? 돈이 없어도 몸이 불편해도 누구에게나 열린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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