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기술자 이근안. 사진은 2012년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출판기념회 당시 모습./사진=뉴스1
17년 전 오늘(1999년 10월28일)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제 발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나타났다. 10년 10개월간 집과 은신처를 떠도는 도피생활을 끝내고 자수를 한 것이다.
대공 담당 형사였던 이근안은 군사정권 시절 전기고문, 물고문, 날개 꺾기, 관절 뽑기, 볼펜심 꼽기, 고춧가루 고문 등 끔찍한 기술로 학생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 등을 가혹하게 고문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온갖 고문에 통달해 다른 기관으로 '고문 출장'도 다녔다. 그는 1979년 남민전 사건, 1981년 전노련 사건, 1985년 납북어부 김성학 간첩조작 사건, 1986년 반제동맹사건 등에서 피의자를 고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8년 경기도경찰청 공안분실장이었던 이근안은 불법체포와 고문을 자행했던 사실이 밝혀지자 경찰에서 사퇴했다. 같은 해 12월24일 김근태 당시 국민회의 의원을 고문하고 납북어부 김성학씨를 감금한 혐의로 지명수배됐다.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1985년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한 이후로 손발을 떨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등 고문후유증을 앓았다./사진=머니투데이DB
자수한 이근안은 1999년 11월 불법감금 및 독직가혹행위죄로 구속기소돼 2000년 9월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자수 이후 경찰 간부의 이근안 도피 비호설이 일부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박처원 전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장은 이근안의 도피를 지시하고 1500만원의 도피자금을 지급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교도소에 있는 동안 이근안은 고문 피해자인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에게 사과했다. 김 전 상임고문은 이에 대해 "진심으로 말하는 것일까, 그런데 왜 눈물을 안 흘리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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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만기출소한 이근안은 목사로 변신했다. 수감생활 중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2008년 10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한 분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이었다. 목회 활동 중에 그는 "고문도 하나의 예술"이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김근태 전 상임고문의 고문 피해 수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남영동 1985'./사진=영화 포스터
2012년 2월 이근안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지난날을 회개한다"고 밝히면서도 "그 당시에는 애국으로 한 일"이라며 고문 피해자에 대한 사죄는 회피했다. 이어 "세월이 지나고 정치형태가 바뀌니 역적이 됐다. 이 멍에를 내가 고스란히 지고 가고 있다"며 변명으로 일관했다.
한편 이근안이 김근태 전 상임고문을 비인간적으로 고문했던 사건은 영화화되기도 했다. 2012년 11월 정지영 감독은 김 전 상임고문의 수기인 '남영동'을 바탕으로 영화 '남영동 1985'를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