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건축 멜랑콜리아'는 이렇듯 무신경하게 방치된 여러 도시 공간들에 대한 애도의 작업물이다. 신문사에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에 몸담아온 저자 이세영은 이 콘크리트 입방체들에 깃든 정치적 맥락과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을 읽어냈다. 그 결과 한국 근현대 건축물에는 공통으로 '멜랑콜리의 정조'가 담겨 있음을 발견했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사당 또한 애초 계획에 없던 돔 지붕이 의원들의 요구로 추가되는 동안, 입법부와 의회민주주의는 군부독재 하에 그 어느 때보다 무력화됐다는 멜랑콜리한 시대상이 배어있다.
그러나 권력자들의 의도는 관철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건물이 완성된 시기는 서구의 신좌파 학생운동이 절정에 달한 때였다. 학생회관은 박정희 정권에 맞서는 거점이 됐고 이한열 열사의 '의로운 죽음'으로 이 곳은 '진정성'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라운지'와 각종 소비 공간이 들어서며 '속물성'이 그 자리를 꿰찼다.
이처럼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주변의 건축물과 공간들은 정치사회적 관점과 역사적 맥락, 그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엮어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은 곳이 된다. 문득, 일상의 공간을 낯설게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다. 저자는 낯설게 보기가 결국 지금 이 곳을 다시 돌아보고 현재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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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름 없는 생활공간, 발전소, 지하도, 도로 등 도시 설비와 인프라에 해당하는 곳들에도 다수 집중했다. 정지된 공간들에 숨어있던 살아 꿈틀대는 이야기들이 잘 채집돼 있다.
◇건축 멜랑콜리아=이세영 지음.반비 펴냄.332쪽/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