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흘림체로 몸부림치는 멸치

머니투데이 공광규 시인 2016.10.22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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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이선균 시인 ‘언뜻,’

[시인의 집]흘림체로 몸부림치는 멸치


골관악기 구멍마다 끊길 듯 풀려나는 선율
가수면 뇌파 속 모스부호로 날아들어요.

불면의 성지에서 누군가 기도문을 외워요.
타고 남은 뼈 고르는 소리
순례객들 밀려들어요.

뼈로 만든 전생의 피리소리 들어본 적 있습니다.
통증이 깊을수록 맑은 물소리 흘러나오는,



울음이란 울음은 모두 창공에 쌓아 둔
나, 다음 생애엔 당신을 울러 가겠지요.

기댈 곳이라곤 돌무덤 뿐
강바닥 쓰다듬는 잔돌 모습으로



내 눈물로 만든 피리 소리로.

- '몸속으로 강이 흘러요' 전문


이선균의 시집에 몸과 관련된 사유가 몇 편 보인다. 위 시 역시 몸에 관한 상상이다. 시인은 몸속으로 강이 흐르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몸에 대한 관찰과 사유의 결과이다. 골관악기에서 나오는 선율과 뇌파의 모스부호가 강물과 유사한 것에서 가져온 비유이다. 악기로 만들어 부는 뼈나 뇌가 다 신체의 부속품들이다. 사람의 뼈로 악기를 만들어 불다니, 이건 몸의 무상성을 의미한다. 뇌는 물컹한 물질에 불과하다. 시에서 ‘불면의 성지’는 불에 탄 시체가 떠내려간다는 갠지스강으로 추정된다. 화자는 뼈로 만든 전생의 피리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시인의 사유가 인생의 먼 시원에 닿아있는 것이다. 전생에서 후생까지의 측량할 수 없는 먼 거리다.


‘붉게, 젖다’도 몸에 관한 상상이다. “문고리의 힘”으로 혼자 동생을 낳은 엄마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새벽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엄마는 창호가 젖도록 신음을 한다. 아기를 낳자 혼자 미역국을 끓인다. 육남매를 모두 이렇게 낳았다. 추수가 끝나면 아버지가 밥벌이를 하러 떠돌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로 떠도는지 시에 정보가 없다. 이렇게 혼자 산고를 포함한 몸으로 견디며 살아낸 어머니의 일생이 “구름 뒤섞인 바다 핏물”과 같이 슬픔으로 젖는 시다.

이선균 시인은 1961년 경기도 포천 출생이다. 2010년 ‘시작’ 신인문학상으로 등단을 한 후 6년 만에 내는 첫 시집이다. 시집 안에는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관찰과 사유에서 오는 묘사의 백미가 넘치는 시들이 많다. 이를테면 ‘멸치 덕장’ 같은 경우다.

흘림체로 몸부림치는
비릿한 인연, 어쩌다
이곳으로 이끌려 왔나.

단 한 획의 미라,
고독한
이미지스트.
- ‘멸치 덕장’ 전문


덕장에서 말라가는 멸치를 흘림체로 몸부림치는 이미지스트라고 한다. 멸치는 붓글씨의 한 획과 유사하다. 멸치가 삶아져서 덕장에서 말라가는 것도 인연이고 운명이다.

개를 잡는 사건에 대한 기억을 형상한 시 ‘슬픈’도 마찬가지다. 대추나무에 매달린 비쩍 마른 개가 몸부림을 치며 비명을 지른다. 과거 시골에서 개를 잡던 모습이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거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개는 몸부림을 칠수록 목이 조여 죽고 만다. 그러나 이 사건 속의 개는 몸부림이 심했던지 목에 맨 줄이 풀어지고 말았다. “비쩍 마른 그 개/ 안개 숲 속으로 달아난다.// 혼미한 길// 살기 위해 다시 돌아온 집/ 몸에 밴 버릇으로 빈 그릇 핥는다.”(‘슬픈’ 부분)

버릇이나 습관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듯이, 짐승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어쩌면 시인은 개를 통해 사람을 은유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아마 은유일 것이다. 자기를 목매달아 죽이려고 했던 주인에게 다시 돌아온 개는 가마솥에서 물을 끓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자기가 먹던 밥그릇을 “몸에 밴 버릇으로” 핥고 있는 것이다. 버릇이나 습관 때문에 닥쳐올 재앙을 잊고 사는 게 사람이다.*

◇언뜻,=이선균 지음 천년의시작 128쪽/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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