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든 10년 위기설…"삼성맨 DNA로 극복할 것"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16.10.18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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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 한비사건·70년 오일쇼크·87년 이병철 회장 별세·97년 IMF·08년 특검 등…"위기 앞 더 단단해져"

고개 든 10년 위기설…"삼성맨 DNA로 극복할 것"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이하 갤노트7)' 단종으로 초유의 위기에 직면하자 '삼성 10년 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위기를 거치면서 기업 역량을 한 단계 발전시켜온 '삼성맨 DNA'가 이번에도 효과를 발휘할 지 주목된다.

'삼성 10년 위기설'은 삼성전자가 설립되기 전, 1966년에 발생한 '한비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검찰은 삼성 그룹 산하 '한국비료주식회사'가 일본으로부터 사카린 원료를 밀수했다는 혐의로 관련자를 구속하는 등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이병철 선대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는 것으로 사태는 진화됐다.



이후 경영에 복귀한 이 선대회장은 전자산업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산업이라 판단, 1969년 삼성전자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후일 삼성 그룹의 중심 축이 되는 기업의 모태가 이때 만들어진 셈이다.

1970년대 초중반에는 오일쇼크가 있었지만 삼성은 이렇다할 직접적인 큰 타격 없이 넘어갔다. 오히려 '해외건설촉진법' 등 정부의 조선·건설업 지원 분위기에 힘입어 삼성중공업을 설립해 조선업 진출 발판을 마련했다.



1987년에 찾아온 위기는 이 선대회장의 타계. 창업주의 부재로 인해 삼성은 구심점 상실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으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0년간 받은 경영수업을 토대로 안정적으로 회장직을 물려받아 오히려 그룹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틀을 조성했다.

이 회장은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표어로 요약되는 신경영 철학으로 취임 당시 1조원에 불과했던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을 현재 200조원 넘는 수준으로 키웠다.

다음의 위기는 1997년 찾아온 외환위기(IMF)다. 삼성은 1995년 오랜 숙원사업이던 자동차 산업에 진출해 '삼성자동차'를 설립했지만 곧바로 닥친 IFM에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2000년 이를 결국 르노자동차에 매각해야 했다.
'손대면 성공'이라는 삼성 신화에 상처를 입힌 역사로 기록되지만, 2000년 이후 삼성전자는 절치부심으로 '월드베스트·월드퍼스트'를 외치면서 애니콜, 보르도TV 등 글로벌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IMF 발발 10년 뒤인 2007년에는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자금 조성을 폭로했다. 대대적인 삼성 특검 수사가 이어졌고 여론 악화에 이 회장은 결국 회장직을 사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삼성전자는 인사혁신을 통해 기업 구조 전체를 바꿨다. 기존 경영지원총괄, 정보통신총괄, 반도체총괄, LCD총괄, 디지털미디어총괄, 기술총괄 등 6개 총괄은 부품을 다루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과 셋트를 다루는 디지털미디어&커뮤니케이션 부문 등 크게 2개 부문으로 재편됐다.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 등 간판급 CEO들이 현직에서 대거 물러나는 등 전체 임원 중 상당수가 물갈이됐다.

그리고 2016년 10월 현재. 삼성은 '갤노트7 사태'를 맞았다.
삼성 안팎에서는 성과주의 및 경직된 조직문화에 대한 반성론이 고개를 드는 한편, 이번 위기 역시 삼성맨의 DNA로 극복해 나갈 것이란 긍정론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에 30년 동안 근무한 한 퇴직 임원은 "크고 작은 변화가 있을 때마다 흔들렸다면 삼성전자는 진작 실패한 기업이 됐을 것"이라며 "위기앞에서 더 단단해지고 오히려 강해지는 것이 삼성전자 DNA"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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