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은 사람을 죽인다...주노의 마지막 선택

머니투데이 박지혜 2016.11.07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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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우수 '코로니스를 구해줘' <끝>

거짓말은 사람을 죽인다...주노의 마지막 선택


깨어난 주노는 바닥에 엎드려 한참을 울었다.

그녀는 온몸을 뒤틀며 깨진 손톱으로 바닥을 긁었다. 눈물은 아무리 흘려도 그치지 않았고, 목에서는 끊임없이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새빨개진 얼굴은 갓난아기처럼 마구 일그러졌다.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러 땅 위를 적셨다. 그녀는 쉼 없이 아영의 이름을 부르다, 허공에 대고 용서를 빌다, 다시 양손으로 귀를 막고 고개를 젓기를 반복했다.

선생은 여전히 옥상 난간에 기댄 채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 눈이 녹아버릴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던 주노의 울음이 점차 잦아들었다. 선생은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왜 우는 거지?”



주노는 겨우 딸꾹질을 멈추고 대답했다.

“아영이가……아영이가 죽었어요.”

“그런데?”


주노는 다시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전부 다……나 때문이었어요.”

주노는 울음을 토해냈다. 선생은 눈썹 한 올 까딱이지 않고 그녀를 내려다봤다.

“넌 이미 충분히 대가를 치르지 않았어?”

그녀가 말했다.

“아영이가 멋대로 자살을 했기 때문에 너도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잖아? 게다가 죄책감 때문에 대학에도 가지 못하고 자퇴를 했지. 네가 겪은 일도 아영이가 당한 것보다 더하면 했지 결코 덜하진 않을 거야.”

주노는 맥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그건 단지……핑계일 뿐이에요.”

아영이 당했던 괴롭힘은 죄다 주노에게 옮겨왔다. 아이들에게 있어 따돌림의 대상은 굳이 아영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주노는 자신이 아영 때문에 왕따를 당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학교에서 도망쳐 방이라는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 버렸다. 표면적 원인은 친구의 자살로 인한 충격 때문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전혀 잊히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꾸몄어요. 1학년 때 이름표를 바꿨던 것처럼, 내가 아영이고 아영이가 나인 것처럼. 온종일 공책에 글을 쓰고 또 썼어요. 전부 아영이가 잘못한 거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단 말이에요. 만약 모두 내 탓이라는 걸 떠올려버리면, 그럼 난……!”

“자살했겠지. 백아영처럼”

선생이 뒤이어 말했다.

“하지만 넌 그러지 않았어. 훌륭하게 스스로를 속여 넘기고 인터넷 방송인으로 재기에 성공했지. 죽은 친구 이야기는 네 성공스토리의 핵심 요소가 되었고 말이야. 이 극적인 시련 덕분에 사람들의 인기를 끌어서 고교 자퇴 학력으로는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만졌지, 아마?”

선생은 손을 들어 주노의 뒤를 가리켰다. 주노가 돌아보니 어느새 그곳에는 인터넷 방송용 컴퓨터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모니터를 통해 생중계되고 있었다. 네티즌들은 낄낄대며 그녀의 모습을 관람하기 바빴다. 채팅창은 어서 게임의 결말을 보여주라는 성화가 빗발치고 있었다.

선생은 그녀의 등 뒤로 다가와 어깨를 감싸 쥐었다.

“네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어.”

그녀가 주노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하나는 게임에서 빠져나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기억을 잃은 채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이야.”

“처음으로 돌아가면……어떻게 되는데요?”

“다시 게임을 플레이해서 아영을 구해내야지. 이제 로드 기회는 한번밖에 남지 않았어.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너는…….”

선생은 말 안 해도 알지 않느냐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주노도 알고 있었다. 내일이 오면 의사들은 그녀의 몸에 붙어있는 생명 유지 장치를 제거할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죽음이 찾아오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되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저들에게 몸을 바쳐야 해.”

선생이 말했다. 주노는 시끄럽게 울어대는 까마귀 무리를 쳐다봤다. 어린애만한 몸집을 가진 거대한 까마귀들이 옥상 난간으로 올라와 있었다. 일순 주노의 뇌리에 구역질나는 그림이 스쳐지나갔다.

“설마 몸을 바치라는 게, 내가 저놈들에게 먹혀야 한다는 뜻이에요?”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노는 무릎으로 기어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싫어요, 절대 안돼요. 다른 건 다 해도 그건 못하겠어요. 게임에서처럼 잠깐 어두워졌다가 끝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산 채로 뱃가죽이 찢어져 본 적 있어요? 자기 머리통이 깨져서 뇌가 쏟아져 나오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냐고요? 진짜로 죽을 만큼 아프단 말이야!”

주노가 필사적으로 매달리자 선생은 마치 양심이 있는 인간처럼, 진심으로 그녀가 가엾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 방법은 싫다고 할 줄 알았어. 넌 방송인이니까 마무리도 방송으로 짓는 게 마땅하겠지.”

주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선생은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 의사들과 기술자들이 3D 뇌파 기기를 통해 네 의식을 체크하는 중이야. 즉, 지금 방송을 하면 외부인들이 네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얘기지.”

“대체 여기서 무슨 방송을 하란 말이에요?”

주노가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진실을 고백해.”

선생이 대답했다.

“그것만이 네가 게임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길이야.”

주노는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전신의 핏기가 사라졌다.

“안돼요. 게임에서라면 얼마든지 털어놓겠지만 이건 실제라면서요? 사람들이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전부 밝히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당신은 어째서 현실이나 꿈속에서나 이토록 잔인한 거예요?”

주노의 눈에서 수도꼭지가 터진 것처럼 굵은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생의 미간에는 짙은 고뇌의 흔적이 어려 있었다.

“……50번째 루프에서 넌 지금과 똑같이 내게 애원했어.”

그녀가 말했다.

“넌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대신 이전 플레이의 기억만이라도 유지하게 해달라고 빌었지. 나는 진실로 뉘우치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아영이를 구해내겠다. 이렇게 말이야. 난 ‘NPC가 플레이어의 게임 진행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어기고 네 기억을 남겨 놓았어. 그때 난 네가 정말로 성공할 줄 알았거든.”

“제가 왜 실패했던 거죠?”

“넌 마지막 순간에 아영이에게 이렇게 말했어.”

― 네가 내 진짜 친구라면 나를 위해서 살아줘.

주노는 전신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그럴 리 없어요.”

“아니, 넌 분명 그렇게 말했어.”

선생은 쓰게 웃었다.

“아영이는 그 말을 듣고 또다시 옥상에서 뛰어내렸지. 난 규칙을 어긴 대가로 정상적인 NPC에서 게임 속 괴물로 추락해버렸고 말이야. 이게 다 옛 제자를 가엾게 여긴 탓이 아니고 뭐겠니!”

주노는 넋이 나갔다. 어떤 길을 택하든 그녀를 기다리는 건 거대한 낭떠러지뿐이었다.

마지막 순간 옥상 난간에 올라섰던 아영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주노는 땅거미가 지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은 이미 바투 다가와 있었다.

주노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처음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비칠거리며 옥상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결정은 끝났니?”

선생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주노가 말했다.

*

“자, BJ 주노 씨! 준비되셨으면 시작 버튼을 눌러주세요!”

MC를 맡은 아이돌이 외쳤다. 주노는 안경을 쓰고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두컴컴한 화면에서 “Inside Of Mind2”라는 제목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더니 이윽고 한글로 조합되었다.

거짓말은 사람을 죽인다. 그 다음에 진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 프랑스의 작가 에르만(Erman)

주노는 화면에 떠오른 문구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나는 뭔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에, 그녀는 곧 그 생각을 잊어버렸다. <끝>

*제목은 연재를 위해 편의상 붙인 것으로 원작품엔 부제가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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