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지방캠퍼스, 약속의 땅 아닌 재앙의 땅?

머니투데이 채원배 사회부장 2016.10.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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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지방캠퍼스, 약속의 땅 아닌 재앙의 땅?


'AI(인공지능), VR(가상현실), IoT(사물인터넷)...'. 글로벌 IT(정보기술) 시대의 빠른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들이다. 세상은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한국의 대학들은 '지방 캠퍼스'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겉으로는 '글로벌 대학'을 외치고 있는 서울의 주요 대학들이 '지방 캠퍼스' 건립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과 '지방', 어울리지 않는 이 두 단어가 현재 한국 대학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대표적인 곳이 최근 총장이 사퇴한 서강대다. '남양주 캠퍼스 건립'에 올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유기풍 총장은 지난달 29일 돌연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이장규 남양주캠퍼스 설립기획단장(대외부총장)도 유 총장에 앞서 28일 사퇴했다. 이들은 학내 갈등만 키워 놓고 결과적으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들이 사퇴하기 직전 본지는 '서강대 남양주 프로젝트 검토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서강대 법인이사회가 남양주캠퍼스 이전의 재무적 타당성을 위해 꾸린 태스크포스(TF)팀이 지난 5월 작성한 것으로, 남양주캠퍼스 건립·운영비용 조달 계획의 실현이 상당 부분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서강대가 남양주캠퍼스 건립에 투입될 1141억원 중 80%(912억원) 이상을 확보하지 못하면 향후 막대한 적자를 떠안게 될 것이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서강대에게 남양주는 약속의 땅이 아니라 재앙의 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본지 9월26일 '서강대, 900억 마련 못하면 남양주캠 사업서 적자 떠안는다' 기사 참조)

서강대의 남양주 프로젝트는 이처럼 많은 위험 요인을 안고 있는데도, 유 총장측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대학 설립자이자 대학의 정신적 바탕이 돼 온 예수회를 비난하면서까지 이를 성사시키려 했을까 의문이 든다. 조그마한 구멍가게도 점포 확장 계획을 세웠다가 재원 조달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계획을 접는 게 상식인데 말이다. 하지만 본지 보도 이후 남양주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일부 교수들과 동문들은 TF팀의 보고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냉정히 생각해 보자. 남양주에 대규모 캠퍼스를 짓는다고 해서 서강대의 경쟁력이 높아질까. 인공지능·가상현실 등을 연구하는 융합학부를 남양주에 새로 만들어 배치한다고 해서 다른 명문대 진학을 계획하던 우수 학생이 서강대 남양주 캠퍼스에 입학할까. 상당수의 서강대 공대생들조차 남양주에 내려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남양주 캠퍼스가 건립된다면 수혜자는 그 곳에 땅을 갖고 있거나 캠퍼스 건립 소식을 듣고 남양주 땅에 투자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학교 경쟁력을 높여주지 못하는 반면 학교 재정을 열악하게 만들고 부동산 투자자들의 배만 불려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학생수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덩치 키우기 식의 양적 경쟁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 서강대가 가야 할 길은 작지만 강한 대학이어야 한다고 본다. 남양주가 아니라 전 세계 예수회 대학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질적 경쟁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남양주에 돈을 쓰기 보다는 미국과 유럽 등에 연구소를 만들어 우수 학생들의 글로벌 진출을 돕는 게 학교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비단 서강대 뿐 아니다. 지방 캠퍼스 건립에 내홍을 겪고 있는 주요 대학들은 다시 한번 원점에서 제2, 제3 캠퍼스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다. 대학이 겉만 번지르르한 외형 경쟁에만 몰두해서는 글로벌 IT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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