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공씨책방 내부전경.2016.9.29© News1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이헌재 전 부총리,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정호승 시인 등도 이런 풍경의 주인공이었다. 이처럼 수많은 지식인과 청년들이 거쳐 간 헌책방이 있다.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 지식의 보고였고 지식인들의 사랑방이었다. 서울시가 지정한 미래문화유산이자 44년 이력을 지닌 국내 대표적 헌책방 ‘공씨책방’이 그 기억의 저장고다.
이런 공씨책방이 신촌을 떠난다. 회기동 경희대 앞에서 시작해 청계천과 광화문을 거쳐 신촌에 둥지를 튼 지 25년. 40여년 개업 기간 중 가장 오래 머물렀던 신촌을 10월 안으로 비우고 성수동으로 옮기게 됐다.
“우리 사회는 재산권만 우선이지 세입자들은 정말 권리가 없어요. 서울시에도 기대해봤는데 별로 관심을 갖지 않더라고요. 이사하면 미래유산 표지판이나 옮겨 붙이라는 말만 들었어요”
책방 주인인 장화민 씨(60)는 몇 달째 속을 끓이다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 신세까지 졌다. 병상에 누워있어도 천장에 책들이 아른거렸다. 더 답답한 것은 어디 한 군데 힘을 보태주는 곳이 없다는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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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씨책방 고 공진석 대표가 펴냈던 '옛책사랑' 1988년 창간호 표지. 필자 이름 속에 변호사 시절 박원순 서울시장의 이름도 보인다. 2016.9.29© News1
“이모부 돌아가시고 제가 책방을 맡게 되면서 신촌에 온지 25년이 됐어요. 그래서 신촌에 정말 애착이 크죠. 아직 꾸준히 찾아오시는 단골도 있고요. 떠나고 싶지 않죠.”
'이곳이 예전 광화문에 있던 공씨책방이 맞느냐'며 불쑥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눈에 밟힌다. 애를 써봤지만 결국 이달 안으로는 이삿짐을 싸야한다. 옮겨갈 곳은 성수동 서울숲 근방의 한 건물 지하실이다. “요즘 헌책방하는 사람들은 다 지하실로 쫓겨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책방 문을 닫을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책이 좋으니까. 책을 펴면 몰랐던 걸 알게 되잖아요. 특히 헌책은 남달라요. 헌책은 내가 거두지 않으면 폐지로 사라지잖아요. 누군가에게 언젠가는 필요할 수 있는 책인데 말이죠. 어떨 때는 생명을 살린다는 생각도 들어요.”
공씨책방의 서고에는 일제강점기 때 서적은 물론 에밀 졸라의 1890년대 저서 등 수많은 서양 고서들도 있다. 그런데 전체 책 권수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주인 장씨도 가늠이 안된다고 한다. 미처 다 끌러놓지 못한 책들도 산더미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공씨책방을 '보물섬'이라고 한다. 인간지성을 기름지게 할 미지의 책들이 쉬고 있는 곳. 얼마남지 않은 신촌에서의 밤을 보내고있다.
공씨책방은 10월 안으로 신촌을 떠난다. 큼지막한 간판이 이별이 예정된 신촌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있다. 2016.9.29© New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