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오늘… '악플' 시달리던 최진실, 세상 떠나다

머니투데이 이재윤 기자 2016.10.02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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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인터넷서 '살인자' 몰려 극단적 선택… 악성댓글 등 사회적 이슈로

8년 전 오늘(2008년 10월 2일) 국민 여배우 최진실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은 8년 전 장례식에서 동생 최진영이 영정사진을 들고 이동하는 모습. /사진=머니투데이DB8년 전 오늘(2008년 10월 2일) 국민 여배우 최진실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은 8년 전 장례식에서 동생 최진영이 영정사진을 들고 이동하는 모습. /사진=머니투데이DB


8년 전 오늘… '악플' 시달리던 최진실, 세상 떠나다
"사랑하는 환희, 준희. 아무 말을 할 수가 없구나! 사랑하는 내 아들, 내 딸. 상처받지 말기를, 찡그리지 말기를… 사랑받고 있기를, 사랑하고 있기를 그리고, 사랑할 수 있기를. 너희들밖에는 안길 수 없는 어머니의 품을 잊지 말기를"

8년 전 오늘(2008년 10월 2일) 오전 6시쯤 배우 최진실은 3일 전 이 같은 메모를 남기고 서울 서초구 자택 욕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악성루머에 시달리던 그의 죽음은 허위사실과 악성댓글, 언론보도 방식뿐 아니라 친권 문제 등 우리 사회에 여러 문제를 제기했다.



1990년대 한국을 사로잡은 '국민 여배우' 최진실은 가정불화·이혼이 수년에 걸쳐 전국에 낱낱이 공개되고, 무차별적인 악성댓글·허위사실에 시달리면서 무너졌다. 아들과 딸을 남겨두고 그는 삶을 등졌다.

최진실은 당시 한 달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우 안재환에게 '25억원의 사채를 빌려주고 압박했다'는 허위사실에 시달렸다. PC통신·인터넷 보급이 확산되면서 그는 온라인에서 '살인자'로 몰렸다.



폭행과 이혼 등 가정불화로 몸살을 앓던 그는 이 같은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을 견디기 어려웠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005년 배우 이은주에 이어 2007년 배우 정다빈, 안재환, 최진실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충격이 컸다.

1년 뒤 허위사실을 처음 유포한 증권사 여직원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과 벌금 400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다.

귀여운 이미지로 1988년 데뷔 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만인의 연인'으로 자기매김 한 최진실의 결혼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2000년 12월 야구선수 조성민과 결혼했으나 2년 만에 파경을 맞았고 결국 2004년 9월 이혼 도장을 찍었다.


이혼과정에서 최진실은 남편의 폭행과 불륜 등 진실공방을 벌였다. 임신 중이던 최진실은 폭행을 비롯해 흡연 등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이혼 한 달 전 조성민은 최진실을 찾아가 폭행하기도 했다.

이 과정은 여과 없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결국 최진실에겐 독이 됐다. 적극적이고 당당한 최진실의 모습은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당시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서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사생활과 공익을 구분하지 못한 언론의 책임도 컸다.

악재는 겹쳤다. 이혼 6개월 전 아파트 광고계약을 맺은 건설업체로부터 '기업이미지 실추' 등의 이유로 30억원을 손해배상 하라는 소송도 당했다. 이 소송은 여성 연예인의 사생활 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여성인권' 문제로 번졌다.

이혼과 동시에 연예계를 떠나있던 그는 2003년 3월 딸을 출산한 뒤 그해 12월 복귀 선언을 하고 2004년 MBC '장미의 전쟁'(오미연 역)과 2005년 KBS '장미빛 인생'(맹순이 역)으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1990년대 IMF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던 최진실은 역경을 딛고 다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1998년 '건국 이래 최고 배우'로 손꼽혔던 최진실은 2005년을 빛낸 TV배우로 1위를 탈환했다.

재기에 성공해 승승장구하던 그의 죽음 더 충격이 컸다. 데뷔 이후 140여 편의 광고를 비롯해 20여 편의 드라마, 18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사회적 활동도 왕성하게 벌였던 그는 드라마 촬영을 앞둔 상황에서 불현듯 세상을 등졌다. 그는 IMF 당시 기아자동차 광고에 무료로 출연했고 여성 운동과 소년소녀 가장 돕기, 미국산 쇠고기·독도 문제 등에 대한 소신발언을 하기도 했다.

최진실의 죽음으로 친권에 대한 논란도 이슈가 됐다. 당시 법에 따라 슬하의 1남 1녀가 이혼한 남편 조성민에게 넘어갔으나 이를 반대한 최진실 유가족의 소송으로 친권자동부활 금지제(최진실법)이 2013년 제정됐다. 이혼한 뒤 친권자가 사망해도 다른 부모에게 친권자가 넘어가지 않고 법원의 결정에 따르는 법이다.

죽음 후에도 최진실은 편치 못했다. 2009년 8월 유골이 도난되는 불미스러운 일을 겪었고 2010년 동생 최진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에는 최진실·최진영 묘지 사기를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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