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 홀에 넘쳐나는 이재민들…"인생이여 고맙습니다"

머니투데이 이건혁 2016.10.09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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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대상 '피코' <마지막회> 프레야가 주고간 선물

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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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처리 과정에서 자네가 부주의했던 점이 담당자의 심기를 건드렸네. 초 인공지능이 이차 종말을 유발할 수 있단 건 교육을 통해 이미 배우지 않았나?"

면접 이후 두 번째로 보는 중간 관리자는 제타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업무 과실로 인한 해고는 퇴직금도 없다. 그러나 제타는 개의치 않았다. 수중감옥으로 끌려가지 않은 것만으로 충분히 다행이었다. 마이클 무어는 인공지능 불법 개조 혐의로 수중감옥에 갇힐 게 분명했다.



고작 열세 대의 피코를 처리했을 뿐인데 통장에는 돈이 두둑했다. 당분간은 일을 찾아 노동부 사이트를 들락거릴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실업수당 신청은 잊지 않았다. 제타는 비니스트의 공연을 보고 난 다음 괌으로 짧게 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다. 해수면이 점차 하강한 덕분에 괌이 다시 뭍으로 드러났고, 경비행기가 착륙할 공항과 조그만 호텔들이 생겨났다. 물에 잠긴 지 삼십 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초 인공지능은 그렇게 세상을 바꿔 놨다. 제타는 비니스트의 공연을 보기 위해 뉴욕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옆 좌석에 앉은 여인과 로맨스를 기대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옆자리에는 제타와 비슷한 나이대의 중년 남성이 앉았다.

"아무렴. 그런 행운이 두 번이나 있으려고."



제타는 여전히 프레야를 생각했다. 함께 한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는데, 기억은 그렇지 않았다. 뇌리에 깊숙이 새겨진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롭게 빛이 났다. 데이터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던 프레야의 말이 떠올랐다.

카네기 홀에 넘쳐나는 이재민들…"인생이여 고맙습니다"
카네기 홀에는 미국에 거주하는 이재민들로 넘쳐났다. 모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값비싼 옷을 걸치고 나왔겠지만 거친 노동으로 상한 피부와 투박한 손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 이재민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각자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다. 필리핀, 괌, 파푸아뉴기니, 이스터 등 남태평양의 섬 이름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인파를 해치고 무대 앞으로 향했다. 제타의 자리는 무대와 가장 가까웠다. 티켓 가격만 해도 제타가 살고 있는 집의 세 달치 월세와 비슷했다. 그런데도 그 주변에는 제타와 처지가 비슷해 보이는 이재민들이 많았다. 그들이 몇 달 동안 돈을 모아 티켓 값을 마련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제타는 지금껏 같은 이재민 출신에게 연대감이나 동질감을 가진 적이 없었다. 문득, 자신이 철저히 혼자 지내왔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어쩌면 프레야가 준 것은 단지 티켓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콘서트가 시작하기 전에 젊은 가수들이 노가수의 업적을 기리며 헌사의 노래를 불렀다. 과연, 무대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직접 보는 공연은 지금껏 제타가 경험했던 VR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비니스트의 보컬, 아멜이 직접 나와서 노래를 부를 때는 저절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차에서만 듣던 예의 우울한 음색이 콘서트 장을 가득 메웠다. 관객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거대한 파도를 만들었다. 제타도 그 무리에 끼어 한껏 감동을 누렸다. 아멜이 무대를 내려와 관객과 악수를 나눌 때는 아멜과 포옹하는 특권도 얻었다.


몇 번의 앙코르가 끝나고 마침내 마지막 곡을 부를 차례였다. 아멜이 북받치는 감정을 잠재우느라 오랜 시간이 흘렀다. 관객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응원했다. 아멜의 마음이 곧 그들의 마음이었다. 아멜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인공 성대 덕분에 깨끗하고 청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는 바로 여러분들의 노래이자 우리 모두의 노래이고 또한 나의 노래입니다. 인생이여, 고맙습니다. 인생이여, 고맙습니다." *

마지막 곡은 '해가 물에 잠길 때'였다. 은은하고 빨간 조명이 무대와 객석을 비췄다. 얼굴이 빨갛게 물든 제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괌에 대한 기억이 없는 그는 노래를 부르며 프레야를 떠올렸다. 그가 열세 번째로 조우한 피코이자, 처음 만난 피코였다.

*칠레의 민중가수 '비올레타 파라'가 죽기 전 마지막 공연에서 그녀의 노래 Gracias A La Vida(삶에 감사하며)의 가사 중 일부를 인용해서 건넸던 인사말. <끝>

*제목은 연재를 위해 편의상 붙인 것으로 원 작품엔 부제가 없음을 밝힙니다.
* 공모전 우수상 작품 '코로니스를 구해줘'는 돌아오는 주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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