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지?" AI가 묻기전 기억폐기 초기화하는 '후엠아이'

머니투데이 이건혁 2016.10.08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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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대상 '피코' <1회> 제타, 7년 된 'AI 너구리' 해체하다

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


제타가 '후엠아이'에 입사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언제나 그렇듯 용역업체는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귀찮든, 더럽든, 힘들든, 뭐든 상관없다. 손 안 대고 코를 풀고 싶다면 용역업체에 맡기면 된다. 제타는 입사한 이래 열두 번째 피코를 데리러 가는 길이다. 피코는 가정마다 한 대씩 할당된 반려 인공지능의 이름이다. 인공지능 법 제 2조는 칠 년에 한 번씩 반드시 피코를 교체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 제때 피코를 교체하지 않으면 전 인류에 큰 위험이 될 수 있으므로, 누구나 때가 되면 새로운 제품을 대여해야 한다. 제품은 과학기술부 산하에 있는 지능청에서 빌릴 수 있다. 모든 제품은 정부가 직접 관리하며, 사용자는 매달 세금을 내듯 사용료를 지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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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상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는 사람을 닮아선 안 된다. 혹여 부품의 일부라도 사람을 닮은 제품을 만들면 당장 수중 감옥행이다. 수중감옥에 들어가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수범죄자들을 모아 놓은 수중감옥에선 혹독한 노동이 일상이다. 재소자들이 뭘 만드는지는 가본 사람만 알지만, 제정신으로 출소한 사람이 없어 생체 실험을 한다는 괴담이 떠돈다. 언뜻 처벌이 지나치다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는 엄격한 규제를 통해 인공지능을 적정 수준으로 통제해야 했다. 한 차례 종말의 위험을 겪은 후부터 재발 방지를 위해 애써야 한다는 여론이 생겼다. 피코를 동물이나 인형처럼 만들어낸 것도 그러한 노력 중 하나다. 만약 사람을 닮은 인공지능을 만들어 냈다간, 차마 정을 떼지 못하고 특이점을 넘길 때까지 방치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렇다면 이차 종말을 당하는 건 시간문제다.



피코의 초기지능은 통상 열 살 수준으로 설정된다. 인간이라면 이 년에서 삼 년 뒤에 사춘기를 맞는다. 전두엽이 발달하고 메타 인지가 활성화되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디에서 왔지?"
"나는 어디로 가지?"
"나는 누구지?"



자아 정체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람은 으레 그런 과정을 겪는다. 부모와 맞먹으려 들기도 하고, 친구들과 부대끼며 자신과 남들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기도 하고, 사랑에 열렬히 빠져들며 성적 정체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면에 독특한 자아가 생겨난다. 즉,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피코도 사춘기를 겪는다. 지능 발달 수준을 고도로 통제한 덕분에 최대 칠 년이란 시간이 지나야 사춘기를 겪게 되지만, 그 순간을 놓치면 통제 불능의 수준으로 지능이 발달하고 자의식을 가진 인격체로 변한다. 그리고 단 몇 달 만에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다. 피코를 교체해야되는 이유이자, 후엠아이 같은 용역업체가 필요한 이유다.

1.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은 아니다. 제타는 마흔 살이 넘는 동안 한 직장에 이 년 이상 머무른 적이 없다. 길어야 일 년 반. 대개 일 년 안에 그만뒀다. 언제나 적당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만 일했다. 기왕이면 단기적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직종을 선호한다. 쉬는 기간에 이곳저곳 여행을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복지가 탄탄하니 굶어 죽을 일도 없고, 정부에서 실업수당 지급을 중단할 때쯤엔 계약직을 몇 탕 뛰면 된다.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동시에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제타가 깨우친 생존법이다.


후엠아이는 노동부에서 알선한 회사다. 사춘기에 접어든 피코를 데려다 기억을 폐기하고 초기화시키는 게 주 임무다. 피 보는 일도 아닌데 다들 무척이나 꺼린다. 피코를 사람처럼 생각해서다. 만약 피코가 인형이나 동물 모형이 아니었더라면 폐기하지 않고 여기저기 빼돌리는 인간들로 암시장이 넘쳤을 거다. 지금도 꼼수를 부리는 사람들이 많다. 제타가 이번에 찾아간 집도 피코의 코드 정보가 정부에서 준 것과 달랐다.

"아주머니, 죄송하지만 코드가 다르군요. 혹시 댁의 피코가 맞습니까?"

그래도 이 사람은 양반이다. 제타가 자꾸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눈을 흘깃거리자 대뜸 눈물부터 쏟았다.

"그냥 모른 척하고 데려가면 안 될까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

암시장에서 구해 온 복제품이다. 코드 번호부터 다른 걸 보니 사기를 당한 게 분명했다. 제타는 목소리에 힘을 주고 점잖이 타일렀다. 여지를 남기면 오히려 달려들어 울고불고 떼를 쓸 게 뻔하다.

"안 됩니다. 지금 인공지능법 위반하신 거 아십니까? 제가 신고하면 아주머닌 곧바로 끌려갑니다. 요새 법이 얼마나 엄격하다고요."

여자는 주저앉아서 한참을 울다가 너구리를 닮은 피코를 방에서 데리고 나왔다. 세모나고 쫑긋한 귀에 양손을 가슴에 다소곳이 모은 품새가 무척 귀여웠다. 그 귀여운 생명체, 아니, 인공지능을 제 손으로 반납할 수 있는 주인은 별로 없다.

"저는 어디로 가는 거죠?"

너구리가 입을 열어 제타에게 말을 걸었다. 호기심은 아주 위험한 징조다. 제타가 무릎을 굽혀 너구리의 몸통을 덥석 잡아 플라스틱 강화 끈으로 묶었다.

"어이, 너구리. 질문은 금지다."

PDA에 여자의 사인을 받고 너구리를 들어 차로 이동했다. 여자는 연신 눈물을 쏟으며 그 뒤를 따라왔다. 여간 성가신 게 아니지만 대부분의 주인은 여자처럼 행동했다. 칠 년이란 시간은 정을 들이고 다시 떼어내기에 너무 긴 시간이다. 그러나 그 기한을 더 줄이면 사회적 낭비가 너무 심해진다. 저마다 고유한 시냅스의 배열을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의 특성상 뇌의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뇌는 가장 비싼 부품이다.

제타는 피코를 쓰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한다. 비싸고, 귀찮다. 피코의 대여 비용만 해도 지금 집세와 맞먹는다. 두 집 월세를 사는 건 제타 같은 하층민에게 사치다. 게다가 피코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일어나자마자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가 끝나면 청소를 하고, 청소가 끝나면 요리를 하며, 요리가 끝나면 설거지를 하고, 설거지가 끝나면 건조를 마친 빨래를 갠다. 간식도 만들어야 하고 장도 봐야 하며 화장실 변기도 닦아야 한다. 게다가 주인이 집에 들어오면 주인의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한다. 가만히 있는 시간은 충전기 안에 들어가서 자는 시간뿐이다. 제타는 그 모든 게 부산스럽다. 어차피 혼자 사는 집에 집안일이랄 것도 없다. 인공지능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구식 PDA 하나로 충분하다. 제타가 태어나기도 전인, 무려 21세기에 만들어진 제품이다.

인공 숲과 수몰 지구를 지나 인디언 전통 가옥처럼 생긴 원뿔형 폐기장에 도착했다. 트렁크에 실어뒀던 너구리를 어깨에 메고 입구에 있는 지능청 공무원에게 코드를 확인받았다.

"DXU23TZX4785, 확인 완료."

코드 리더기에 확인 알람이 뜨자 공무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가란 제스처를 취했다. 제타는 끈을 풀어달라며 낑낑거리는 너구리를 안고 해체실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코드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너구리는 꿈틀대며 여전히 괴로워했다.

"하고 싶은 말 없어?"

너구리를 작업대 위에 눕히며 제타가 물었다.

"집으로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주인님을 도와야 해요."

작업 중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미안하지만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란다."

치직, 방전기가 작동하는 소리와 함께 제타를 바라보고 있던 너구리의 눈빛이 황망히 갈 길을 잃었다.

"코드 번호 DXU23TZX4785, 해체 준비 완료."

제타는 옆에 달린 조그만 마이크로 무전을 보내고 해체실을 나섰다. 제품은 엔지니어들이 알아서 처리할 터였다. 건물을 나와서 차에 몸을 싣자마자 입금이 완료됐다는 문자가 떴다. 후엠아이는 모든 계약을 건당으로 처리했다. 제타는 자동운전 모드를 활성화 시키고 목적지를 집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2088년에 발매된 '비니스트'의 1집 앨범이다. 반세기나 지난 옛날 음악이지만 제타는 비니스트 특유의 우울한 음색을 좋아했다. 제타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워 눈을 감았다. 노을빛이 제타의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 2부로 계속>

*제목은 연재를 위해 편의상 붙인 것으로 원작품엔 부제가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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