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퇴계 이야기, 그리고 방대한 학단 형성의 기반 도산서원

머니투데이 한다빈 동네북서평단 공학박사 2016.09.24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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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북] <20> '조선 서원을 움직인 사람들'...조선사회 지식의 공론화의 체계를 엿보다

편집자주 출판사가 공들여 만든 책이 회사로 옵니다. 급하게 읽고 소개하는 기자들의 서평만으로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속도와 구성에 구애받지 않고, 더 자세히 읽고 소개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래서 모였습니다. 머니투데이 독자 서평단 ‘동네북’(Neighborhood Book). 가정주부부터 시인, 공학박사, 해외 거주 사업가까지. 직업과 거주의 경계를 두지 않고 머니투데이를 아끼는 16명의 독자께 출판사에서 온 책을 나눠 주고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동네북 독자들이 쓰는 자유로운 형식의 서평 또는 독후감으로 또 다른 독자들을 만나려 합니다. 동네북 회원들의 글은 본지 온·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주 동네북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에 선정된 책들로 구성했습니다. 인문학의 첫걸음에서 좀 더 깊은 안목까지 기를 수 있는 책들은 전국 도서관이 엄선해 추천한 ‘내 마음의 양식’들입니다.

숨겨진 퇴계 이야기, 그리고 방대한 학단 형성의 기반 도산서원


퇴계 이황과 도산서원 중심의 이야기다. 제목은 조선 서원이지만, ‘퇴계와 퇴계학단과 그 네트워크’라는 부제가 더 부합한다. 각기 전공이 다른 6명의 저자가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여 쓴 책이다. 전반부에서는 주로 퇴계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의 학문에 관한 이야기가 후반부에는 퇴계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뤄진다.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많은 자료의 나열이 읽는 이로 하여금 엄청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조선시대를 이끌어 왔던 유학사상이나 유림의 흐름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없는 경우 조금은 낯설게 읽힐 수 있는 내용이다.

후반부의 방대한 자료에 대한 나열식 설명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조선 후기의 사림에 대한 방대한 기록의 흔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전반부에는 퇴계의 서찰을 통해 퇴계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세한 설명이 있어 글 후반부의 지루함을 메워 준다.



특히 그의 손자 안도에게 보낸 몇 통의 편지 내용을 통해 그가 조선 유학의 대가라는 다가서기 힘든 사상가라는 측면을 벗어나 집안의 아버지이나 할아버지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학문을 소홀히 하는 손자에게 냉엄한 꾸짖음에 앞서 할아버지로서 먼저 손자를 이해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잔잔하게 드러내는 그의 서찰 내용은 지금 시대에 사는 이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절대 일방적 질책이나 강요가 아닌 이해를 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손자에게 관철 시키고자 하는 의지는 퇴계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한다.

“이 책을 읽게 하더라도 그것은 노래를 부르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비록 그렇지만 나로서는 이 때문에 너를 끝내 바른길로 인도하지 않을 수 없기에”라는 편지 내용에서 보듯 할아버지이자 학문의 선배로서의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엄함이 보인다.


이 책의 흥미로운 부분은 ‘도산서원 네트워크와 인물들’이라는 후반부의 첫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즘과 같이 SNS가 없던 시절에 집단 지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이끌어져 왔는가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림통문이라는 틀이 그 것이다. 요즘의 SNS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림통문을 통해 특정 주제에 대한 유림의 의견을 모으고 그 뜻을 모아 조정에 상소라는 형태로 전달하는 체계야 말로 의견을 수평적으로 모으고 정제시키는 그 당시의 훌륭한 네트워크가 있었던 것이다.

다만 글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이러한 네트워크가 결국은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거대한 유림 집단이 획일적인 집단화 되는 경향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유생들이 사림으로서의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은 조선의 붕당 정치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이면에는 유림들 간의 사림통문 체계를 통한 여론 형성과 표출이라는 근간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제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에서 이러한 체계의 좋은 면을 잘 활용한다면 정치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삶의 원천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숨겨진 퇴계 이야기, 그리고 방대한 학단 형성의 기반 도산서원
아울러 도산서원을 방문한 사람들의 이름, 고향 등의 기록, 도산서원 원장들의 기록, 혼인을 근간으로 하는 인맥 등 방대한 기록으로 오늘날 그 옛날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는 큰 자산이자 복이라는 생각이다.

* 부산 영도도서관
◇ 조선 서원을 움직인 사람들
=정시열 외 지음. 글항아리 펴냄. 396쪽/2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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