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경제이론’…금리 낮춰도 꼼짝 안하는 소비·투자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2016.08.2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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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의 역설]미래 불확실성 우려로 가계 지갑 닫고, 기업 투자 미뤄…전문가들 통화정책 의존보다 경제 체질개선 주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1일 오전 열린 8월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1일 오전 열린 8월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금리를 낮추면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가 늘어 성장세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전통 경제학 이론이 무너지고 있다. 통화당국이 경기회복 지원을 위해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치인 1.25%로 낮췄지만 의도한 효과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 금리 낮췄는데…저축은 늘고, 투자는 위축=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민 총저축률은 36.2%로 1998년 3분기(37.2%) 이후 16년6개월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국내총투자율은 27.4%로 2009년 2분기(26.7%) 이후 6년9개월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가계는 소비를 줄여 저축을 늘리고 기업은 투자확대를 보류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금리인하의 성장률 제고 효과도 점차 떨어지고 있다.

한은이 독자적으로 기준금리를 결정한 1998년 이후 △2000년 10월~2002년 4월(5.25%→4%) △2003년 5월~2005년 9월(4.25%→3.25%) △2008년 9월~2010년 6월(5.25%->2%) 등 총 3번의 금리인하기가 있었다. 이후 1년간의 금리인상기를 거쳐 3.25%가 된 기준금리는 8번의 추가 금리인하로 현재 역대 최저치인 1.25%까지 떨어졌다.



앞선 금리인하기의 성장률 반등 효과는 비교적 뚜렷했다. 2000년 4분기 –0.7%로 가라앉았던 국내총생산(GDP)은 이후 7분기 평균 1.7% 성장률로 회복세를 나타냈다. 2003년 카드대란 사태에 대응한 금리인하도 효과를 봤다. 2003년 1분기(-0.7%), 2분기(0.0%)로 떨어졌던 GDP 성장률은 금리인하 이후 10분기 평균 1.2%로 반등했다.

2008년 금리인하는 예상치 못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해 신속하고 과감하게 진행됐다. 임시 금통위를 열어 한 번에 금리를 1%포인트 전격 인하하기도 했다. 이 영향으로 2008년 4분기 –3.3%까지 떨어졌던 성장률은 2009년 이후 분기 평균 1%대로 반등했다.

그러나 2014년 이후 단행된 금리인하 효과는 앞선 시기보다 성장률 반등효과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2014년 1분기 이후 분기 평균 성장률은 0.7%에 그쳤다. 이 기간 분기 성장률이 1%를 넘긴 것은 2014년 1분기(1.1%), 2013년 3분기(1.2%) 두 차례 뿐이다.


특히 지난 2014년~2015년 정부 대규모 추경편성이 동반된 점을 감안하면 금리인하 성장률 제고효과가 약화됐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 통화정책 효과 떨어진 이유는= 이처럼 금리인하 ‘약발’이 떨어진 이유는 국내 경제구조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고령화 심화로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은 2000년 7%에서 지난해 13%로 2배 가까이 높아졌다. 오는 2030년에는 24.3%로 확대될 전망이다. 소비성향이 낮은 고령층 증가는 전반적인 소비활력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면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점도 문제다. 한은에 따르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01~2005년 4.8~5.2%에서 2015~2018년 3.0~3.2%로 낮아졌다. LG경제연구원 등 주요 민간연구기관들은 이미 2%대 중반대로 잠재성장률이 떨어졌다고 예상한다.

잠재성장률이란 한 나라가 쓸 수 있는 자본, 노동 등 생산요소를 모두 사용했을 때 물가상승 등 부작용 없이 달성 가능한 최대 성장률이다. 정부와 한은이 경기부양을 위해 확장적 재정·통화정책을 펴도 성장률을 3%대 이상 끌어올리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대외 경제여건의 불확실성도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세계적 저성장·저물가 국면에서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국들은 각기 다른 방향의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 여기에 중국 경기둔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언제 부각될 지 모르는 리스크가 잠재돼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앞서 “대외경제 여건이 불안정할 때는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그동안 금리인하가 없었다면 성장세가 더 꺾일 수 있었다는 반론도 있다. 전 금통위원을 역임했던 한 인사는 “2014년 세월호 사건, 2015년 메르스 사태 등 단기 내수위축 충격을 금리인하로 일부 상쇄한 효과도 있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통화정책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 내실을 다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은 “금리정책은 단기 총수요 관리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보장하지 못 한다”며 “연구개발 투자, 규제완화 등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높여 공급 측면의 성장잠재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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