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의 노교수는 이 말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지금 한국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고위 공직자들을 향한 꾸지람이었다.
23일 서울 광화문 인근서 만난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의 언설은 매서웠다. 그는 최근 펴낸 책 '특혜와 책임'에서 한국의 공직자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즉 "특혜를 받은 만큼 책임을 다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송 교수는 '맹자'에 나오는 사자성어 '탐위모록'(貪位慕祿)을 인용하며 세태를 비판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관리가 된 사람은 예외없이 자리를 탐하고 돈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아무리 유능해도 고위관리를 시켜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뇌물 혐의로 체포돼 현직 검사장으로선 처음으로 구속된 뒤 공무원직에서 해임된 진경준 전 검사장이나 "국민은 개·돼지" 발언으로 파면된 나향욱 5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모두 '갑질'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나 전 기획관이 술에 취해서 (그 발언을) 했을 뿐이지 고위 공직자들 상당수가 (그 의식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송 교수는 다음 달 28일 시행 예정인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필요성에도 공감했다. 다만 법으로 제재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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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처럼 법치주의를 이용하는 것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공직자) 자신들이 법을 운용하기 때문에 큰 효과를 내기 어려워요. 지금부터라도 국민 전체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의식을 갖고 그 의식 속에 고위 공직자가 속박돼도록 만들어야 해요.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부터 교육이 필요한 문제죠."
그의 책 '특혜와 책임'은 고전의 다양한 고사와 경구, 삼국시대 사료, 미국·영국·일본의 사례를 아우르며 공직자들이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 설명한다. 송 교수는 한국의 고위층에는 △역사성 △도덕성 △희생성 △단합성 △후계성이 없으며 대신 "자리를 차지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자리를 차지해서는 위로 더 올라가는데 여념이 없으며, 올라가서는 그 자리를 지키는 데 급급하다"고 일갈한다.
그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곧 한국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역사의 동력'이다.
"아무리 정치제도를 바꾸고 좋은 대통령을 뽑자고 해도 한계가 있어요. 대통령은 결국 표를 받아야 해 '포퓰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죠. 공직자 개개인이 나라와 국민으로부터 혜택을 받는 만큼 책임을 다하는 게 필요해요. 옥스포드 사전에도 '특혜는 책임을 수반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요."
어쩌면 '당연한' 말을 구구절절 풀어내야 한다는 사실이 답답해서였을까. 노교수는 굳은 표정을 좀체 펴지 못하며 자리를 떴다.
◇특혜와 책임=송복 지음. 가디언 펴냄. 296쪽/1만 6000원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역사의 동력'이라며 각자가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더 나은 미래가 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이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