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전 오늘…사담 후세인, 걸프전의 단초를 제공하다

머니투데이 박성대 기자 2016.08.02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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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이라크, 쿠웨이트 침공

걸프전에 쓰였던 전쟁 무기들./출처=위키피디아걸프전에 쓰였던 전쟁 무기들./출처=위키피디아


26년 전 오늘…사담 후세인, 걸프전의 단초를 제공하다
쿠웨이트는 오스만제국 시절 이라크 남부 바스라 주(州)에 속한 작은 도시였다. 1899년 엄청난 양의 원유가 이 지역에 매장된 것을 알게된 영국이 자의적으로 편입시키며 이라크와 분할됐다.

두 나라의 갈등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시작됐다. 대표적인 친미국가가 된 쿠웨이트와는 달리 이라크는 아랍 민족주의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원유를 팔아 경제 재건을 추구하던 이라크는 쿠웨이트의 원유 증산정책이 계속돼 유가가 하락하자 갈등이 증폭됐다.



그러던 중 26년 전 오늘(1990년 8월 2일) 새벽,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국경을 넘었다. 자국의 원유를 훔쳐간 쿠웨이트가 배상을 거부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전날까지만 해도 두 나라 사이에서 영토분쟁과 보상 문제를 풀기 위한 대화가 진행되고 있던 상황이라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불과 6시간 만에 수도인 쿠웨이트 시티까지 이라크군에게 함락됐다. 침공 일주일 만에 모든 저항을 진압한 이라크는 양국의 합병을 선언하고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19번째 주로 편입시켜 버렸다.



그동안 쿠웨이트를 이라크 영토라고 주장해온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쿠웨이트의 풍부한 유전을 접수한 것이다.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 소집해 이라크에 쿠웨이트에서 즉각 철군하라고 요구했지만, 후세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서방국가는 물론 주변 무슬림 국가들의 반발도 잇따랐다.

이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이 이듬해 1월17일 공습에 나섰다. 걸프전이 시작된 것이다. 다국적군에는 미국, 영국 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일부 아랍국가들도 참여해 총 33개국이 이라크를 공격했다.

미국의 네트워크 방송인 CNN을 위주로 실시간으로 최전방의 전투가 보도되면서 '비디오 게임 전쟁'(Video Game War)이라는 말도 나왔다. '사막의 폭풍'(Desert Storm)이라는 작전 하에 다국적군은 이라크 군시설 등에 첨단무기를 동원해 공습을 퍼부었다.


결국 이라크군은 상대가 되지 않았고 2월 24일 다국적군의 지상공격이 시작되자 쿠웨이트에서 물러난다. 전쟁에서 패배한 이라크는 유엔의 12개 결의안을 수락하고 2월 28일 부시 미국 대통령의 종전 선언으로 전쟁이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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