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바로미터 위스키 시장…"폭탄주 마시던 화려한 시절 또 올까"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민동훈 기자 2016.07.28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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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큐와 나폴레옹, 패스포트' 국산 위스키의 추억…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내리막길, 시장 구도도 급변

경기 바로미터 위스키 시장…"폭탄주 마시던 화려한 시절 또 올까"


1960~1970년대 위스키는 고위 공직자나 재벌가 등 사회 지배층만 마시던 술이었다. 서양에서 들여온 술이라고 해서 양주로 불렸다. 군사정권 시절 군납을 목적으로 최초 국산 위스키를 제조하면서 국내 위스키 시장이 열렸다.

위스키 시장에는 한국 경제 상황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거치며 경제가 급성장했는데 이때 위스키 시장도 함께 컸다. 1990년대 초 주류 수입이 개방되면서 프리미엄 위스키가 쏟아져 들어왔고 양주를 마시는 일반 소비자들도 크게 늘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정체기를 맞았던 위스키 시장은 2000년대 초 IT(정보통신)·벤처 버블로 다시 살아났다. 룸살롱 접대 자리가 늘면서 값비싼 위스키 소비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1조원을 훌쩍 넘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스키 시장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최근엔 2·3차를 가지 않는 회식 문화와 독주를 기피하는 음주문화 확산으로 매년 시장 규모가 줄고 있다. 대신 스카치(스코틀랜드산) 위스키 일변도였던 시장이 40도 이하 저도주 열풍에 이어 숙성연산을 표기하지 않은 무연산 제품 등장, 미국·캐나다산 위스키 수요 증가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인삼위스키'부터 '패스포트'까지…국산 위스키의 추억=국내에서 위스키 원액이 들어간 진정한 위스키 시초는 1970년대 베트남전쟁 때 군납용으로 만든 청양산업 '그렌알바'였다. 알코올 도수 95% 이상 주정에 물을 탄 희석식 소주에 원액 20% 미만 위스키를 섞은 변형 위스키였다. 일반인에게 판매한 최초 위스키는 1974년 백화양조와 진로가 제조한 '인삼위스키'다.

1980년대 초에는 '캡틴큐', '나폴레옹'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캡틴큐는 국산 주정에 위스키 원액을 20% 미만으로 섞은 혼합주로 론칭 첫 해에 1000만병 가까이 팔렸다. 소주, 막걸리만 마시던 주머니 얇은 대학생들에겐 큰 맘 먹어야 살 수 있는 비싼 술이었다. 마신 다음날 머리가 깨질 것 처럼 아픈 숙취에 시달려야 했지만 불티나게 판매됐다.

(왼쪽부터) 진로 'VIP', 오비씨그램 '패스포트', 베리나인 '썸씽 스페셜' 신문광고 이미지.(왼쪽부터) 진로 'VIP', 오비씨그램 '패스포트', 베리나인 '썸씽 스페셜' 신문광고 이미지.
이어 'VIP'(진로), '패스포트'(오비씨그램), '썸씽스페셜'(베리나인) 등 6년산 이하 스탠다드 위스키가 잇따라 등장했다. 어떻게 제조됐는지, 술맛이 좋은지도 알지 못한채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 마신다는 위스키를 맛본다며 이들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많았다.


1991년 주류 수입이 개방되면서 12년산 프리미엄 위스키 시대가 열렸다. 페르노리카코리아(프랑스)의 '임페리얼'이 출시 1년 만에 시장 점유율 24%를 돌파하며 시장을 평정했다. 12년산 이하 위스키는 대접을 받지 못하는 트렌드도 생겨났다. 디아지오코리아(영국)도 '윈저'를 내놓고 한국 위스키 시장 공략에 나섰다.

◇외환위기와 벤처 붐, 글로벌 금융위기…위스키 시장의 굴곡=위스키는 가정보다 룸살롱 등 유흥주점에서 회식·접대 용도로 많이 팔리는 만큼 국내 경제 여건과 고락을 함께 했다. 경기가 좋을 때 위스키 시장도 같이 웃었고, 불황기에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국 경제와 함께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 위스키 시장은 외환위기 때 첫 위기를 맞았다. 위스키 출고량이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287만 상자로 300만 상자에 육박했지만 1998년 148만 상자로 반토막 났다.

최고 절정기는 벤처 붐이 일었던 2000년대 초반이다. 위스키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가 대중적인 음주 문화로 확산하면서 서울 강남 일대 룸살롱은 빈방이 없을 정도로 활황이었다. 숙성기간이 긴 17년산, 21년산, 30년산 제품이 속속 출시되고 글로벌 위스키 업체들이 한국 시장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위스키 시장은 다시 내리막길로 돌아섰다. 독주를 즐기는 음주문화가 사라지고 가벼운 술자리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위스키 출고량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위스키 출고량은 2013년 200만 상자 밑으로 떨어진 이후 매년 감소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80만 상자로 20여 년 전인 1990년대 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싱글몰트와 저도주 열풍…급변하는 위스키 시장=최근 위스키 시장은 격변기를 맞고 있다. 윈저와 임페리얼이 양분하던 시장에 국내 업체 골든블루가 가세해 3파전을 벌이고 있다.

골든블루는 위스키 업계 고정관념을 깬 알코올도수 36.5도짜리 저도주를 내놓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국내 소비자에게 인기가 많은 스카치 위스키는 알코올 도수가 40도 이상이어야 하는데 골든블루는 '스카치'라는 표기를 포기하면서까지 저도수에 집착했다.

저도주 열풍은 위스키 시장 다변화를 불러왔다. 취하려고 마시기보다 다양한 맛과 문화를 즐기려는 수요가 늘면서 싱글몰트(한 증류소에서 100% 맥아로 만든 몰트위스키)가 인기를 끌었다.

접대 자리가 줄면서 숙성연한을 표기하지 않는 무연산 실속 제품도 많이 팔리고 있다. 스코틀랜드 위스키뿐 아니라 아이리시 위스키, 아메리카 위스키, 캐나디언 위스키, 재팬 위스키 등 다양한 지역에서 생산한 위스키가 각광 받고 있다.

위스키 마니아를 위한 초고가 프리미엄 마케팅도 여전하다. 싱글몰트 위스키 맥캘란을 수입 유통하는 에드링턴 코리아는 지난해 '맥캘란 에디션 넘버원'을 1000병 한정 판매했고, 최근 윌리엄그랜트앤선즈(WGS) 코리아가 5병 1세트에 8000만원에 달하는 '발베니 DCS 컴펜디엄'을 내놓기도 했다

30년 이상 위스키 업계에 몸담아 온 김일주 WGS 코리아 대표는 "세상에 나쁜 위스키는 없고, 좋은 위스키와 더 좋은 위스키가 있을 뿐"이라며 "최근 저도수, 무연산, 하이볼 등 다양한 제품이 등장한 것은 소비자 선택 폭이 넓어졌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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