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공정위의 존재감과 기업의 한숨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2016.07.27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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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공정위의 존재감과 기업의 한숨


"직원들 모두가 그야말로 '멘붕(멘탈붕괴)'상태 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 논리를 적용한다면 매각은 물 건너간 거 아니겠습니까?" SK텔레콤과의 합병이 무산된 CJ헬로비전 직원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공정위가 8개월 가까이 검토하기에 심사숙고하는 줄은 알았지만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M&A) 불허 결정을 내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공정위는 지난 18일 전원회의를 통해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을 불허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두 회사가 결합하면 유료방송시장과 이동통신 도·소매시장에서 경쟁제한이 발생한다는 것이 이유다. 케이블TV 유료방송시장에서 지배적 지위가 강화되는 한편 이동통신시장에서 KT, LG유플러스 등 경쟁사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위의 해석은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공정위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합병이 유료방송 권역 21곳에서 경쟁 제한을 가져온다고 했지만 전국 유료방송 시장을 놓고 따져보면 합병법인이 출범해도 2위 사업자다. 현재 유료방송시장 점유율 1위는 가입자 820만명(점유율 29.4%)을 보유한 KT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유료방송 가입자수를 모두 합쳐도 717만명(25.8%)이다.

케이블TV는 1995년 지역방송 독점사업자 방식으로 시장이 열린 만큼 규제 대상이 아닌데도 퇴행적 잣대를 들이댔다. 전국 단위 디지털 방송 경쟁이 치열한 시장 환경에서 아날로그 케이블 TV 점유율까지 포함해 현실과 동떨어진 오류를 범했다. 유료 방송시장을 지역 단위에서 전국 단위로 개편하려는 미래창조과학부와의 정책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 방송과 통신의 결합은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융복합이 이뤄지는 분야다.



SK와 CJ그룹은 그야말로 비상이다. SK텔레콤은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 사업자로 도약을 꿈꿨지만 사업 구상이 물거품이 됐다. CJ그룹은 CJ헬로비전 매각자금으로 문화·물류사업에 집중하려던 계획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번 결정으로 공정위는 다시 한번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정위가 반대하면 기업들이 옴짝달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하지만 시장과 동떨어진 갈라파고스 규제로 민간기업의 매각을 가로막았다는 오점도 남겼다.

공정위가 권역별 합산 점유율을 M&A 승인 기준으로 삼는 한 CJ그룹은 SK텔레콤 뿐 아니라 KT, LG유플러스 등 다른 통신사에도 CJ헬로비전을 매각할 수 없다. 방송·통신 산업과 관계없는 해외자본에 팔지 않는 한 사업구조 개편이 불가능해졌다. 실사 과정에서 중요한 기업 기밀이 공개된 만큼 전략적으로 사업을 키우는 것도 어렵게 됐다. 기업간 자발적·선제적 인수합병을 봉쇄한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가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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