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프리즘]포켓몬고와 지도, 그리고 주권

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2016.07.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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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프리즘]포켓몬고와 지도, 그리고 주권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 열풍에 구글의 지도 반출 문제가 다시 쟁점화되고 있다. ‘포켓몬고’가 구글지도를 기반으로 작동되는데 상세지도 반출을 허용하지 않아 국내 출시가 불투명한 것 아니냐며 정부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면서부터다. 정부는 ‘포켓몬 고’와 지도 반출 문제는 별개 사안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지난달 구글이 상세 지도 반출을 국토지리정보원에 정식 요청하면서부터 시작된 논란에 더욱 불을 지핀 형국이 됐다.

구글은 길 안내부터 위치기반 광고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정확도가 떨어져 해외 관광객은 물론 국내 안드로이드 사용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우리 정부는 구글어스(위성사진 서비스)와 정밀지도가 결합될 경우 상당한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며 구글어스 속 주요 안보시설 위치를 지우거나 국내에 서버를 두고 운영하라는 입장이다. 구글이 합법적 과세기준을 피하기 위해 국내 서버 설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논쟁이 확전되는 양상이다.



구글이 국내 상세지도 반출에 혈안인 진짜 속내는 뭘까. 올초 알파고 쇼크로 확인했듯이 인공지능 시대 데이터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더욱이 정밀 지도 속 위치값이 더해진 모바일 빅데이터는 과거 PC 웹 환경에서 발생하는 빅데이터와는 비교 자체가 안될 정도로 정밀해 그 활용가치는 ‘금맥’으로 통할 정도다. 정밀 지도와 결합된 빅데이터는 무인자율주행차, 드론 택배, 인공지능 로봇 등 구글이 추진하는 신사업의 핵심자원이 될 전망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에 스마트폰 사용자의 절대 다수가 안드로이드를 사용하고 있는 한국의 상세지도와 이로 유발되는 빅데이터는 구글 입장에선 매력적인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쟁점이 하나 있다. 구글 지도 반출이 데이터 주권을 위협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모바일 이용자들의 위치, 이동경로 등 사생활 정보는 물론 사회 현상을 유추, 분석할 수 있는 상세 데이터들이 죄다 구글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 전송된 데이터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대해서는 구글만이 알 수 있다. 행여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서버가 해외에 있는 한 국내법을 적용하거나 직접 조사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2010년 한국 검찰이 구글이 스트리트뷰 서비스 준비 과정에서 국민들의 일부 개인정보들을 불법 수집했다는 이유로 구글 본사에 직원 소환을 요청했으나, 구글측의 거부로 조사가 흐지부지됐던 전례도 있다.



지난 12일 EU(유럽연합)가 미국 정부와 체결한 ‘프라이버시 쉴드(Privacy Shield)’ 협정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이 협정에 따라 앞으로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기업들은 유럽에서 본국으로 데이터를 보내려면 유럽이 정한 정보보호 기준 준수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또 부당하게 사용됐다고 판단될 경우 미국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EU가 미국에 빼앗긴 디지털 주권을 되찾기 위해 지난 10여년 넘게 검색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 결국 최소한의 데이터 통제권이라도 확보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조약이다. 올 초 “디지털 주권은 유럽의 미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로 지금 바로잡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의 디지털 주권까지 잃게 될 것”이라던 비비안 레딩 전 EU집행위원회 부의장의 호소는 구글 데이터 독점화를 바라보는 유럽 국가들의 위기감을 잘 보여준다.

데이터는 정보자본주의 시대의 핵심자원이다. 정보 통제권마저 잃는 건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구글 지도 반출 논란을 계기로 ‘한국판 프라이버시 쉴드’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논의가 절실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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